[체험! 지구기행]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캄보디아의 국기와 화폐에 등장하는 이 나라의 상징인 앙코르 와트 사원. 오직 돌만 쌓아 지은 사원 내부의 돌벽에 새겨진 화려한 부조는 사원 외관의 아름다움을 훨씬 뛰어넘는다. 조성하기자

《1431년. 600여 년간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에서 번성하며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누려온 크메르의 앙코르 왕조가 아유타야 왕국의 시암족(태국인)에게 몰락하던 날. 과연 앙코르 민중은 슬퍼했을까. 위대한 ‘돌의 예술’로 찬탄받는 앙코르의 유적. 그 앞에서 모두가 던지는 찬사를 미룬 채 하필이면 그 창조자를 힐난하는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600년 이상 지속된 이 고된 역사(役事)로 고통받았을 사람들의 원성이 돌무더기에서 새어나오는 것같기 때문이다.》

지난 달, 3년 만에 다시 찾아간 앙코르 유적지 시엠리아프(캄보디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공항 청사는 깔끔하게 단장됐고 공항과 시내를 잇는 도로에는 가로등도 가설됐다. 평양으로부터 파견된 여성 접대원이 10명이나 있는 북한의 ‘평양랭면’식당도 뜻밖이었고 몇 명뿐이던 한국인 가이드가 43명으로 늘었다는 사실도 놀라왔다. 3년 전 공사 중이던 소피텔 체인(프랑스)의 로얄 앙코르 호텔(2000년 10월 개관)도 문을 열었다. 시내에는 새로 지었거나 짓는 중인 건물도 많았다. 그러나 변치 않은 것도 있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 유적 보호를 위해 4층을 넘기지 않는 키 낮은 건물, 그리고 동양 관광객만 보면 몰려와 집요하게 물건을 파는 어린이들.

●힌두교-불교 등 종교 걸작 곳곳

도착 다음 날. 앙코르 톰부터 찾았다. 한 변이 3km나 되는 돌 벽에 둘러싸인 거대한 정사각형의 도성 앙코르 톰. 시엠리아프 주변의 드넓은 고고학 유적지에 산재한 100여 개 가운데 앙코르 와트(사원)과 함께 백미로 손꼽히는 걸작의 유물이다. 이 성에 들어가는 문은 모두 다섯 개. 그러나 관광객은 가장 화려한 남문을 주로 이용한다.

관음보살의 얼굴과 코끼리 조각과 비슈누 등 힌두교 신의 부조(浮彫)로 장식된 화려한 문루, 해자(垓字·성곽 주변 물)에 놓인 다리 좌우 난간에 도열한 반인 반수의 나가(크메르인이 믿었던 뱀 신)상과 수십 개의 석상, 컴퓨터 게임의 블록 쌓기를 연상시킬 만큼 짜임새 있게 맞물린 돌조각 성벽(높이 8m) 등등….

성문을 지나 1km를 가니 바이욘 사원이 보인다. ‘크메르의 미소’라고 불리는 관음보살의 얼굴이 돌탑 사방을 장식한 사면 상이 있는 곳. 1863년 프랑스인 앙리 무오(앙코르 유적에 관한 기록을 남긴 최초의 유럽인)의 ‘장엄한 폐허’라는 기록과 달리 바이욘은 어느 정도 제 모습을 되찾은 상태다. 1세기 이상 걸린 복원 사업의 결과다.

사원 1층에는 두 개의 회랑이 있고 그 회랑 벽은 거대한 부조로 장식돼 있다. 그 중 제1회랑(동서 160m 남북 140m)의 부조. 앙코르 왕조 최 전성기의 자야바르만 7세(1181∼1219)가 인근 톤레사프 호수에서 참파 군과 벌인 해전과 서민 및 궁중과 귀족의 생활상이 담겨 있다.

한 층위로 올라서면 테라스(옥상의 야외). 탑(높이 64m)을 중심으로 16기의 첨탑이 주변에 둘러선 형태다. 은은한 미소의 관음보살 사면 상은 이 주변 첨탑의 벽체다. 사면 불은 196개나 됐다지만 현재 남은 것은 32개 뿐이다. 힌두교를 신봉하던 앙코르 왕조에서 관음보살이 등장하게 된 것은 자야바르만 7세의 불교 공인이 계기. 바이욘은 지상에 구현된 힌두교의 우주 중심인 메론 산이고 우주의 중심에서 사방을 향해 인자하게 미소 짓는 관음보살은 곧 ‘신성한 왕도’ 앙코르의 주인인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을 나타낸다.

1431년 앙코르 톰을 점령한 아유타야 왕조. 이들은 도성과 사원의 불상과 신상,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장식물을 파괴하거나 탈취한다. 황금과 유물을 탐해서가 아니라 크메르인의 정신에서 신의 존재를 파괴함으로써 권토중래의 의지를 뽑아 버리기 위해서다. 이후 서양인에게 발견될 때까지 400여 년간. 앙코르는 밀림 속에 버려진 채 기록에서 사라진다. 그 동안 돌로 지은 성과 사원은 스러지고 허물어져 밀림의 일부가 된다. 그 폐허의 모습은 앙코르 톰의 따 프롬 사원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앙코르 톰에서 유일하게 19세기 중반 발견 당시 모습 그대로 남겨진 곳이다. 사원의 돌 벽을 움켜 쥔 듯한 형상으로 뿌리 내린 거대한 보리수와 명주솜 나무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폐허가 된 것은 자연의 탓만은 아니다. 인재이기도 하다. 바이욘 근처의 폐허 바푸온 사원(1060년 완공)을 보자. 이 거대한 사원은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다. 완전 해체 후 조립하는 복원 작업이 지반침하로 실패했기 때문. 피라미드처럼 사원 내부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믿은 사람들의 소행이라는 말도 들렸다.

●19세기 중반 서양인에 의해 발견

그 뿐일까. 1876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크메르의 앙코르 유적이 소개된 후 캄보디아는 수집가의 표적이 됐다. 수많은 조상(彫像)이 끊임없이 밀반출됐다. 프랑스 문화장관을 지낸 전위 작가 앙드레 말로(1901∼1976). 그는 1923년 앙코르 톰 부근의 사원 반테아이스레이에서 핵심 조각 몇 점을 훔쳐 밀반출하려다가 프놈펜에서 체포돼 실형을 선고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 현장 반테아이스레이를 보자. 사원 외벽을 장식한 불상 가운데 머리가 붙어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앙코르의 석양. 바이욘에서 만나는 ‘크메르의 미소’만큼이나 인상적이다. 해질녘 앙코르 와트의 중앙 탑 아래 테라스에 올라가면 서쪽으로 이어진 긴 참배길 너머 서편 하늘로 붉은 노을이 펼쳐진다. 거기 걸터앉아 지친 다리를 쉬게 하며 감상하는 석양의 노을. 매일 반복되는 해넘이처럼 역사도 반복된다. 침략으로 노획한 노예의 피땀으로 일으킨 왕국의 영화, 그리고 노예의 후예에 의해 왕국이 붕괴되는 과정의 반복. 그 평범한 역사를 우리는 앙코르에서 본다. 유물은 제 자리에서야 그 빛을 발하는 것. 앙코르의 모든 유물이 제자리에 돌아와 이 아름다운 시엠리아프의 석양에 발갛게 다시 물들 날을 기다린다.

캄보디아 시엠리아프=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앙코르 왕조의 요람 시엠리아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프놈’이란 ‘구릉’을 뜻한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캄보디아는 평원 지대. 메콩강은 평원의 동부로 이 나라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프놈펜이 캄보디아 수도가

된 것은 앙코르 왕조의 멸망 이후. 1431년 아유타야 왕조의 시암족(태국)에게 쫓긴 크메르인이 선택한 곳이 바로 남쪽의

프놈펜이다.》

●수상 족의 삶의 터전, 톤레사프 호수

앙코르의 왕도가 있던 곳은 시엠리아프 주변. 이곳이 수백 년 왕조의 요람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평원 서편의 모든 강이 흘러드는 호수 ‘톤레사프’ 덕분이다. 건기에 3000평방km(서울의 5배)인 이 호수는 우기에는 그 면적이 1만1000평방km로 늘어나는 수자원의 보고. 앙코르 왕조는 호수에서 흘러나와 메콩 강에 유입되는 물(톤레사프 강·121km)을 활용한 효과적인 치수 정책으로 한 때 인구 100만 명의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왕국의 주인이었다.

앙코르 관광지로 벌써 1세기 이상 각광을 받아온 시엠리아프. 그런데도 그 외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프랑스 식민지와 내전, 크메르 루주의 킬링필드 대학살 등 정치사회적 불안정 탓 일게다. 허나 그 초라함도 뒤집어 보면 순수함으로 드러나 그것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시엠리아프에서는 톤레사프 호수의 수상촌이 관광객의 관심을 모은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호수의 배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수상촌의 외양은 계절(우기 건기)별로 확연히 구별된다. 우기(5∼11월)에는 톤레사프 강의 제방을 따라 형성되지만 건기(12∼4월)에는 수심 3∼5m의 물 한가운데 형성된다. 관광객에게는 건기 때 모습이 더 흥미롭다. 경찰서 병원 주유소 상점은 물론 학교까지 모두 배에 있다. 주소도 있어 우편물도 배달된다. 전기는 자동차 배터리를 이용. 그러나 이 배터리로는 흑백TV만 볼 수 있다.

수상족은 캄보디아 사람만이 아니다. 비에트족, 참족도 있는데 월남 공산화 이후 조국을 버리고 여기 정착한 사람도 있다. 시엠리아프 시내로부터 보트 선착장까지는 우기에 20분, 건기에 40분소요. 투어 시간은 두, 세 시간. 앙코르 패키지 상품에 대개 포함돼 있다.

●옥류관 냉면 맛볼 수 있는 북한 음식점

최근 시엠리아프에서는 북한 측이 직접 경영하는 ‘평양랭면’식당(지난해 11월 개점)이 성업 중이다.

이곳의 종업원은 모두 평양에서 파견된 일꾼들. ‘대외 봉사 학원’(평양) 출신의 여성 접대원 10명과 평양 옥류관에서 실습을 마친 요리사 5명 및 사장 지배인 등 총 17명. 다양한 음식을 파는데 냉면 값은 미화 7달러. 메밀 김치 등 모든 재료는 북한에서 직접 가져다 쓴다고. 두 차례 냉면 맛을 보았는데 그 맛이 평양의 옥류관에 못지않았다.

이 식당의 특징은 식당이면서도 춤과 노래를 불러 주고 또 부를 수 있다는 점.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음식을 기다리거나 식사하는 동안 여성 접대원은 번갈아 가면서 영상 반주기가 갖춰진 홀 한 쪽의 넓은 공간에 나와 ‘반갑습니다’ ‘휘파람’등 북한 가요와 민요를 부르고 3, 4명이 한 동작으로 무용도 보여준다. 이들은 남측 가요와 ‘마이 웨이’,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 등 영어 노래도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 한국 관광객을 놀라게 한다.

손님들도 영상 가요 반주기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이들은 흥이 나면 손님과 함께 듀엣으로 노래도 부른다. 물론 사진 촬영에도 응하며 질문에 대답도 잘 해준다. 손님 가운데는 일본인 관광객과 현지 캄보디아인, 사업차 오가는 태국인도 많다고 했다.

이 곳 북한 식당이 남측 관광객에게 의외로 보이기는 해도 캄보디아와 북한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듣고 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듯 하다. 북한은 지난 1970년 외유 중에 론놀의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당하고 망명길에 올랐던 시아누크 공(당시 국가원수)을 김일성 주석이 공항까지 마중 나가 영접할 만큼 호의를 베풀었다고 전해지는 캄보디아의 우방.

식당은 시엠리아프 시내에 있으며 개점 시각은 오전 11시∼오후 11시.

●킬링필드

1975년부터 4년간 캄보디아인 150만 명을 무자비하게 살상한 크메르 루즈의 대학살을 뜻하는 이 단어는 당시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 동명의 영화에서 비롯됐다. ‘킬링필드’는 2차대전 중 600만 명의 유태인을 ‘인종 청소’라는 이름 하에 죽인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대학살) 못지않은 인류의 비극 가운데 하나로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캄보디아의 곳곳에 남아 있는 ‘킬링필드 탑’을 통해 확인된다.

시엠리아프의 자그마한 사원 ‘와트 마이’에도 규모는 작지만 당시 희생자의 유골을 수습해 유리벽의 탑 속에 안치해 둔 킬링필드 탑이 있다.

무심한 아이들은 그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 지 그 탑을 오르내리며 놀고 있었다.

●여행 정보

▽캄보디아 △입국 절차=입국 비자 필요. 출국 전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에 신청하고 도착 공항에서 수수료(1인당 미화 20달러)내고 발급받는다. 베트남 경유 시 베트남 입국 비자도 필요. △유의 사항 ①지뢰=길로만 다니면 관광지는 안전. ②물=구입한 생수만 마신다. ③밀반출=유적지에서는 돌 하나도 가져가면 안 됨. ④복장=땡볕에서 온종일 버티려면 챙이 큰 모자 필수.

▽항공편=10월1일부터 대한항공은 시엠리아프를 매일 직항 체제로 운항한다. ‘서울↔하노이’는 자사(KE) 및 베트남항공(VN)의 코드 셰어(공동 운항)편, ‘하노이↔시엠리아프’는 편당 50석을 고정 확보한 베트남 항공편(매일 운항)을 이용하는 형태. 이 덕분에 하롱 베이(베트남)와 앙코르와트라는 두 개의 세계 유산(World Heritage)을 한 일정으로 편하게 여행하는 환상의 루트가 가능해졌다.

▽대한항공 패키지=‘하롱 베이(베트남)+앙코르와트’(4박6일)는 현재 국내 여행사에 판매 중. 가격은 109만∼129만원. 취급 여행사(지역 번호 02)는 △자유 여행사 3455-8938 △하나투어 2127-1139 △롯데관광 399-2301.

캄보디아 시엠리아프=조성하기자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