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최승호, '백만 년이 넘도록 맺힌 이슬'

  • 입력 2003년 9월 24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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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더라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오

은하수를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도 이슬이 걸립니까?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는군요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

-시집 '아무 것도 아니면서도 모든 것인 나'(열림원)중에서

씨름꾼은 언제나 모래판에 걸려 넘어지고, 화가는 물감통에, 술꾼은 술병에 걸려 넘어진다. 언제나 가장 잘하는 게 장애(障碍)이다.

씨름꾼은 언제나 모래판에서 영웅이며, 화가는 물감통을, 누에는 제가 지은 감옥을 열어야 비로소 하늘을 얻는다. 언제나 제일 무거운 장애가 날개가 되나니, 꽃나무는 꽃잎이 업(業)이요, 새들은 날개가 업이었다. 부지런히 업을 꽃피울 일이다.

‘백만 년이 넘도록 맺힌 이슬’이라, 그러나 저 여치는 뒷발에 걸리는 이슬을 먹고 창공을 날아오를 것이다. 마침내 하늘을 나는 백만 년 이슬의 예언자가 이르노니 ‘무거이 짐 진 채 한숨짓는 이들아, 모두 내게로 오지 마라. 너의 가장 무거운 짐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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