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일본 근대 독자의 성립'

  • 입력 2003년 9월 26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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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 독자의 성립/마에다 아이 지음 윤은경 이원희 옮김/367쪽 1만5000원 이룸

문학 연구자가 집필한 최초의 본격적인 일본 근대 독자 성립사론인 이 책에서 핵심어는 ‘근대 독자’다. 근대 국가는 그 성원의 균질화, 즉 모든 성원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정보를 공통적으로 습득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이 책은 근대 국민국가로의 전환, 나아가 근대성이라는 동아시아사의 중요한 주제와 맞닿아 있다.

책은 1830년대 에도 막부 시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시기를 다룬 아홉 편의 논문으로 이뤄져 있다. 일본의 독서 문화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는 메이지 유신 이후 4반세기다. 획일적 독서에서 다원적 독서로, 공동체적 독서에서 개인적 독서로, 음독에서 묵독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는 공동체적 유대감에서 벗어나 개인적 자아에 눈을 뜬 근대인으로의 변화이기도 하다. “메이지 청년들의 인생 방향을 결정지은 것은 양친에게서 받은 교육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었다”는 말이 이를 압축한다.

저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을 권함’(1872)의 독자를 아버지 세대, 출간 시점에 청년기였던 형 세대, 동생 세대로 나누어 각각의 특징을 고찰하기도 한다. 아버지 세대는 학문으로 입신출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책으로 받아들였고, 부모로서 자식을 인도할 실마리를 얻었다. 형 세대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종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가장 첨예한 비판자들을 배출했다. 동생 세대는 교과서에 실린 ‘학문을 권함’을 접한 세대로, 입신출세의 합리화 동기로 받아들여 부모 세대의 기대에 호응했다.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변화가 근대 독자 성립의 요인이자 징표라는 점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상식의 실례를 치밀하게 논하는 경우는 드물다. 저자는 일본에서 묵독이 일반화된 것이 기껏해야 2세대 혹은 3세대 전이라고 지적하고, 메이지 시대의 소설 일기 회상록 등 다양한 자료에서 음독에 대한 강한 애착의 사례를 발굴, 분석한다. 예컨대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뜬구름(浮雲)’(1887∼89)에 나오는 의성어 및 의태어의 빈도수와 그 양상, 문장의 박자, 연극적 몸짓을 특징으로 하는 문체 등을 분석하여 ‘뜬구름’이 본래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듯 읽어야 하는 작품임을 논증한다.

이 책에는 일본 근 현대 문학 전문가가 아니면 생소하기 마련인 작품, 저자, 사건 등이 무수히 나온다. 하지만 친절한 역주와 부록의 용어 해설이 독자의 부담을 덜어준다. 감히 총평한다면 방대한 자료의 섭렵을 바탕으로 사회사, 문학사, 문학비평, 매체론, 출판학 등을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의 보기 드문 모범이다.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우리 출판, 서적, 독서 문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 성과는 의외로 드물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 근대 독자의 성립’이라는 주제에 대한 우리 연구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의의도 지닌다.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해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문제연구’(제7호·역사비평사)의 ‘특집 1920∼30년대 독서의 사회사’, ‘한국 근대 소설독자와 소설 수용양상에 대한 연구’(천정환 지음·서울대 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한국 개화기 서적문화연구’(김봉희 지음·이화여대출판부).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bookma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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