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로 옮겨놓은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 이재용, 10월2일 개봉)는 정복, 정절, 질투, 처녀막에 관한 새로운 해석과 질문을 던지면서 성애(性愛)에 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이 영화의 핵심은 남녀관계의 본질을 들쑤시는 감칠맛 나는 대사에 있다. 조씨부인 역을 맡아 질투와 사랑이 끈적하게 엉킨 ‘거미여인’의 눈빛을 보여준 이미숙, 바람둥이 선비 조원 역으로 영화에 첫 출연해 바람기와 사랑이 동거하는 이율배반적 눈빛을 보여준 배용준이 만났다. 영화 속에서 부각된 성(性) 담론적 대사들을 중심으로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털어놨다.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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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숙부인의) 27년간 굳게 닫혀있던 그 문을 열겠다?”(조씨부인)
이미숙=처녀막을 지키고 그걸 확인하고 또 확인시키는 것만이 정절일까. 숙부인은 정절을 지키려는 마음 하나로 살지만, 조씨부인은 시대가 강요하는 정절에 도전하는 시대적 아픔을 안았다. 숙부인은 수절가지만, 조원의 공세에 무너지고 난 뒤 되레 그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조씨부인은 정을 통했다고 마음까지 주진 않는다. 누가 진정 정절을 지킨 걸까.
배용준=조선시대에 얼마나 열녀가 귀했으면 ‘열녀문’을 만들었겠나. 하지만 숙부인은 한번 마음이 열리면 다 열리는 그런 여성이다. 반면 조씨부인은 유교사회에서 일탈하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삼는다.
:행복:“저는 (수절하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니까요”(숙부인)
배=자기 스스로 ‘이건 행복이다’라고 생각했겠지만, 자신을 가로막았던 것들이 열리면서…. 영화에서 조원은 숙부인의 ‘코드’(천주교 집회에서 헌신하는 봉사정신)를 빨리 찾아내 집회에 참석하고 헌납하면서 그녀의 문을 열었다.
이=본능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게 뭐 그리 행복할까. 여자는 남자를 정말 좋아하면 ‘문’을 열게 돼 있다. 사랑이 아니면 동정심에서라도…. 하지만 숙부인이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것처럼 성에 대한 욕구를 발산시키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을까. 얼마 전 나는 십자수(十字繡)에 빠졌었다. 한번 시작하니 아무 생각이 안 나더군. 밤새. 열심히 .
:마음 몸 결혼:“마음은 권인호에게 있고, 몸은 조원에게 가 있으면서, 시집은 유대감에게 온다?”(조씨부인)
이=사회가 허락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웃음)
배=결혼 전엔 많은 여자들을 사귈 수 있지만 결혼하면 한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게 내 인생관이다.
:질투:“누이는 오직 갖고자 하는 마음과 가질 수 없는 것을 부수고자 하는 마음, 두 가지 밖엔 없는 사람 같아.”(조원)
이=남자를 독차지하고픈 여자의 마음은 같다. 하지만 난 갖지 못하면 ‘부수기’보단 포기하겠다. 배우로서 내가 ‘불륜’하고 남자만 보면 다가갈 것 같은 이미지로 생각되지 않는가. (웃음) 그러나 난 ‘상대가 나를 여자로 생각할까?’ 하고 아주 잠깐 생각할 뿐이다. 아마 극중 연기로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
배=남녀가 다 똑같다. 질투심을 자극해야 더 적극적이 된다. 나는 내 안에 없는 건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믿는다. 조원의 바람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복:“처녀막을 부순 흔적보다 더 훌륭한 정복의 증거가 아니겠소.”(조씨부인) “여자는 남자에게 매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끝장이니라.”(조원)
이=남자는 ‘방목’해야 한다. 여자가 ‘나한테서만 얻어내라’고 남자에게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만 바라보고 살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여자가 매달리면 마음이 떠난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간 사랑은 똑같다. 캐냄, 승복, 작전, 음모, 당하는 여자, 즐기는 여자, 그리고 행하는 남자.
배=진정한 정복은 마음을 뺏는 것. 난 정복하기 싫다. 정복당하고 싶다.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건 하면 할수록 ‘정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복하고 확실히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매력은 떨어질 것이다. 남녀관계도 같다.
:통(通): “정녕 통(通)했느냐, 통하고 버렸더냐?”(윤중원-숙부인의 시동생)
배=조씨부인이 조원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건 숙부인과 몸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통’했기 때문 아닐까. 요즘 세대로선 충분히 가능한 생각 아닐까. 나 같아도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상대에게) 마음을 통하는 건 몸을 통하는 것보다 더 싫을 것 같다.
이=내게 숙부인과 같은 정숙함이 있는지, 아니면 조씨부인과 같은 면이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숱하게 옳고 그름을 말하지만, 결국 답을 낼 수 없는 게 성(性) 아닐까. 그게 이 영화의 메시지인 것도 같고….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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