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도 똥을 누는데
머리 가슴 배
무엇을 담아두려 해
다 벗고
오른발 먼저 탕(湯)을 나온 이 순간
-시집 '따뜻한 슬픔'(책 만드는 집)중에서
탕, 총소린지 알았더니 물소리다. 선녀탕, 옥류탕, 목욕탕 그런 종류인가 보다. 세상에 갖은 양념은커녕 간장 한 종지 소금 한 숟갈 없는 맹탕이 바로 저 탕인데, 얼큰한 매운탕 먹은 이나 저 탕에서 나온 이나 ‘시원타’ 소린 공통.
참 깨달음이 오는 시간과 장소도 가지가지, 김 모락모락 나는 탕 속에 누워 때를 불리던 그 노곤한 가운데 뜬금없이 나비 생각은 났을꼬?
머리엔 지식을, 가슴엔 욕망을, 뱃속엔 재물을! 그러나 쿨렁, 불어난 제 몸피만큼 넘치는 탕 속의 물을 보자 멈칫한다. 자연스럽게 성냥골보다 가벼운 나비의 몸이 떠오르고, 입술이 절로 열린다.
‘나비도 똥을 누는데….’
불린 때 밀 것도 없다. ‘오른발 먼저 탕을 나오자’ 왼발이 따라붙는다. 유레카(깨달았다)! 설마 아르키메데스처럼 목욕 가방도 잊고, 선녀 옷도 잊고 맨몸으로 달려 나오진 않았겠지?
맑은 깨달음의 포착이다. 하지만, 일상 속 깨달음의 유지보존은 얼마나 어려운가. 저 이는 아마 요즘도 또 탕을 찾을 것이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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