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 나의 인생]"재산약정등기로 부부사랑 더 튼튼해져"

  • 입력 2003년 10월 1일 17시 10분


2001년 6월. 법전(法典)에는 있었지만 한번도 사용한 사람이 없어 사문화(死文化) 상태였던 ‘부부재산계약제도’를 두 사나이가 살려냈다.

부부재산계약제도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결혼 후 재산관리 및 이혼할 때의 처분권한 등에 대해 미리 계약을 하는 것으로 정식 명칭은 ‘부부재산약정 등기신청’이다.

공무원 김모씨(31)와 직장인 이상호씨(38)는 이 제도를 부활시키려는 한 법률회사와 결혼정보회사의 노력이 동아일보에 소개되자 선뜻 자원자로 나섰다.

두 남자가 아내와 한 계약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성실한 결혼 생활을 약속한 것은 물론 돈에 관한 권리는 대부분 아내에게 넘기고 자신은 의무만 가졌다.

주위에서는 “남자 망신 다 시킨다”며 말렸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하는 아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하도록 해 주고 싶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 뒤 2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남부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꾸려 가고 있다. 김씨와 동갑인 아내 장모씨(31)는 아직 맞벌이를 하고 있다. 내년에는 집을 장만할 예정이다.

장씨는 “가정에서의 실제 권한은 다른 여느 주부와 다르지 않다”며 “굳은 약속을 해 준 남편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혼인 중 취득 재산은 아내 이름으로 등기를 한다’는 계약 조항에 따라 내년에 장만할 집은 아내 이름으로 등기할 생각이다.

이혼하면 혼인 중 취득한 재산의 70%를 아내가 갖는다는 조항도 있지만 실제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은 아직 없다.

이씨와 아내 이지용씨(30) 역시 내년에 집을 넓히면서 등기를 두 사람 이름으로 할 생각이다. 이들은 ‘본가와 처가에 똑같이 베푼다’ ‘가사노동에 적극 기여한다’는 계약도 했다. 남편 이씨는 “신혼 초기에 의식적으로 계약조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이젠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고 말했다.

부부재산계약제도는 미국과 대만 등에서는 보편화된 제도. 당시 대법원도 두 부부의 등기 신청을 접수한 뒤 예규를 새로 만드는 등 제도의 본격적인 사용에 대비했다.

그러나 이후 사용자가 거의 없어 제도는 다시 사문화될 위기에 처했다. 장씨는 “친한 친구들은 계약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예비 신랑에게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제도를 이용하고 싶은 예비부부는 직접 부부재산약정서를 작성해 가까운 등기소에 가서 간단한 증빙서류와 함께 등기 신청을 하면 된다. 이 등기는 법률적인 효력을 가진다.

공무원 김씨 부부의 부부 재산 계약 조항과 현재 상황
구분부부재산계약 사항현재 상황
재산관리혼인중 취득재산은 아내명의 등기내년 새집은 아내 명의 예정
부부 급여와 공유재산은 아내가 관리보통 아내가 하는 수준
장래를 위한 저축은 아내 명의로아직 빚만 있고 저축은 못함
채무부담남편의 채무는 아내 동의 받아야남편이 빚진 일 없음
자녀양육양육비는 남편이 전액 부담아직 자녀 없음
이혼할 때재산은 아내 70% 남편 30%로 분할이혼할 생각 전혀 없음
자녀 양육권은 아내에게 있음
남편은 이혼후 양육비의 60% 부담
이혼사유남편의 외도“상상할 수도 없는 일”
남편의 이유 없는 3일 이상의 늦은 귀가나
외박. 2일 이상 도박
“우리 남편은 너무 착하고
성실해서 이런 일 없음”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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