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 빛 번진 진회색 판에
점점점 찍혀 있는 빗방울 화석.
혹시 어느 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
감춘 눈물방울들이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
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가을 저녁 안개
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
삶의 육필(肉筆)로 남으리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사)중에서
화석(化石)이란 무엇인가? 돌이 된다는 것이다. 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월의 풍화를 거슬러 불멸을 꿈꾼다는 것이다. 썩어 마땅할 은행잎이, 삼엽충이, 암모나이트가 단단한 기억이 되어 누대의 지층에 숨어 있다가 마침내 환한 햇살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공룡의 눈물방울과, 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마저 화석이 될 수 있다니. 그러나 어떤 단단한 놈도 저 홀로 화석이 될 수 없으니 ‘채 굳지 않은 마음’을 만나야 한다. 화석보다 더 연한 ‘지층의 마음’을 만나야 한다. 지층은 언제나 화석보다 부드럽고, 화석보다 풍부하며, 궁극 화석이 돌아갈 흙더미이다.
저 흙더미가 오랜 주검의 껍데기뿐 아니라 두근거리는 심장마저 품고 있다면 꽃잎은, 꽃잎은 어쩌란 말인가? 저보다 더 여린 허공 위로 마음껏 마음껏 붉을 일이다. 구름도 마음껏 흐를 일이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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