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독서교실]권장도서목록 '학생 눈높이'에 맞춰야

  • 입력 2003년 10월 3일 18시 15분


《청소년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기 위해 학교현장에서 씨름하고 있는 교사들의 칼럼을 싣습니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힐지,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눈높이를 어디에 맞출지 체험에서 우러나온 정보들은 우리 학교, 우리 집 아이의 독서지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점심시간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보면 대략 반 정도는 자기 목록을 갖고 있다. 판타지나 순정소설만 읽는 아이, 람세스에서 출발해서 고대 문명에 관한 소설로 시야를 넓힌 아이, 도서관에 들여놓은 만화를 전부 섭렵하는 아이, 가끔 작가 목록을 쥐고 책을 찾으러 오는 아이…. 몇몇 아이들은 역사와 과학 혹은 요리와 같은 자기 장르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나머지 반 정도의 아이들은 헤매고 있다. 무엇을 읽을지 몰라서 신간 서가코너에서 제목만 보고 책을 가져온다거나, 도서관에 붙여놓은 권장도서목록을 보고 책을 골라온다.

아쉽게도 중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목록은 만족스럽지 못한 게 현실이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나오는 책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초등학교까지 창작동화나 외국동화를 재미있게 읽다가 온 아이들에게 적당히 쉬운 어른 책을 권하는 상황이다.

반면 권장도서목록에도 거품이 들어 있다. 실제 아이들은 권장도서목록을 어려운 책, 따분한 책으로 생각하며 거리를 쉽게 좁히려고 하지 않는다. 몇몇 우수한 아이들만 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보다 좀 더 쉽고 재미있는 책들을 목록에 넣어야 한다. 어른들이 보기에 권장도서목록이 다소 쉽고 유치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로 채워질지라도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자기 삶으로 풀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두 목록의 차이를 보면 일정 정도 방향을 제시하는 권장도서 목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중학교인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최근 대출 상위권에 든 책을 보면 학교에서 ‘독서퀴즈’대회 등을 진행하며 읽으라고 권한 책들과 아이들이 스스로 읽겠다고 골라온 책들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표1 참조).

순수하게 아이들이 골라서 빌려간 우선대출순위 책들(표2 참조)을 보면 중학생들에게 재미와 읽을거리를 함께 제공하는 ‘노빈손 시리즈’와 만화들이 순위에 오른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고민 끝에 아이들의 추천을 받아 들여놓은 판타지 소설 ‘가즈 나이트’와‘흑기사’가 ‘셜록 홈스 전집’ 등의 추리소설과 더불어 반납되기 무섭게 대출된다. 아울러 교양오락프로그램 ‘!느낌표’가 선정한 책과 같이 유명세를 탄 책들이 한 부류, ‘국화꽃 향기’류의 순정소설이 또 한 부류를 이룬다. 외국의 10대를 다룬 소설 ‘나는 조지아의 미친 고양이’나 ‘청바지 돌려 입기’도 아이들이 자주 빌려가는 책들이다. 두 목록의 차이를 보면 일정 정도 방향을 제시하는 권장도서 목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중학생에게 책을 권할 때는 그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굳이 독서토론으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이 책 정말 재미있어, 그렇지?” 하면서 눈빛을 보내줄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면 책은 또 하나의 세상으로 아이들을 성큼 안내할 것이다.

서미선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학교도서관 담당

▼서울 구룡중학교 도서 대출 상위 랭킹▼

△자전거도둑 △국어시간에 소설읽기 1,2 △손도끼 △아홉 살 인생 △창가의 토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가시고기 △연어 △메밀꽃 필 무렵 △중국견문록 △운수 좋은 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물구나무 과학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국어시간에 시 읽기△무기 팔지 마세요 △우리 누나

▼자발적으로 대출 신청한 책 상위 랭킹▼

△노빈손 크루소 따라잡기 △먼나라 이웃나라 △가즈 나이트 △괭이부리말 아이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흑기사 △오디션 △비빔툰 △로마인 이야기 △국화꽃 향기 △쥐 △뇌 △모모 △TV동화 행복한 세상 △연탄길 △광수생각 △나는 조지아의 미친 고양이 △톨스토이 단편선 △키친 △바람의 나라 △불의 검 △청바지 돌려입기 △한나의 선물 △헤르만 헤세의 환상동화집 △셜록 홈스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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