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이 된 날 저녁에 축하주를 했나.
“관장님과 도와주신 분들을 모시고 소주와 삼겹살로 파티를 했다. 경기에서 이긴 날 유일하게 술을 마신다.”
―그날 이후 가장 크게 바뀐 건 뭔가.
“명예를 갖게 된 것이다. 또 나를 보고 달려와 손을 잡고 ‘정말 자랑스럽다’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고 17년 만에 방송국을 통해 전화를 해 온 중학교 동창도 있다.”
열악한 여자 복싱 환경 탓에 이번 타이틀전 대전료는 500만원에 불과했다. 생활비는 고사하고 훈련비로도 한참 모자라는 액수. 그러나 그는 돈 욕심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도 돈을 벌면 뭘 하고 싶나.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 체육관에 가난한 동생들이 많고, 친척 가운데도 어려운 분들이 있다. 만약 큰돈을 벌면 공장을 지어 불우한 청소년이나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 보고 싶다.”
얼핏 보면 ‘남자’로 오인할 만큼 짧은 머리에 각진 얼굴, 작고 매서운 눈매를 지녔지만 “고등학교 때는 제법 인기가 많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자서전 ‘나는 복서다’에선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학창시절 편지를 보내오거나 좋아한다는 뜻을 전해 온 남자들은 꽤 있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대시해 온 사람은 없었다.나도 특별한 느낌이 든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서 행복한 가정을 보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나.
“생각이 없다. 이렇게 큰일을 벌여 놓았는데, 복싱이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그 역시 ‘여린 가슴’을 지닌 여자라는 점은 대화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겨야 한다는 집념으로 상대 선수를 쓰러뜨리고 나면 갑자기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가슴이 찡해진다. 27일에도 너무 마음이 아파 콕스 선수를 껴안고 유일하게 생각난 영어로 ‘아이 앰 소리’라고 했더니, 콕스가 ‘베리 굿’이라고 하더라.” 지금까지 7번 싸워 이기기만 한 그는 패배도 준비할 줄 아는 프로였다. “항상 이길 수만은 없다. 질 수도 있지 않나. 중요한 건 내가 최선을 다했느냐는 것이다.”
앞으로 40세까지 권투만 열심히 하고, 은퇴하면 시골에 전원주택을 한 채 지어 개 한 마리와 함께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는 게 그의 소박한 희망이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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