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변두리 공터에는
세상 구르다 천덕꾸러기 된
갖은 슬픔이 모여 웅성웅성 타고 있다
서로의 몸 으스러지게 껴안고
완전한 소멸 꿈꾸는 몸짓,
하늘로 높게 불꽃 피워 올리고 있다
슬픔이 크게 출렁일 때마다
한 뭉텅이씩 잘려나가는 어둠
노동 끝낸 거친 손들이
상처에 상처 포개며
쓸쓸히 웃고 있다
- 시집 '위대한 식사'(세계사) 중에서
누군가의 한때를 빛내 주던 것들이었으리. 부서진 문갑, 장롱 문짝, 책상 서랍, 벙어리 장갑, 굽 없는 구두 한 짝, 아기곰 인형, 찢긴 그림 일기장까지 멋대로 뒹굴다 한 자리에 모였다. 주인은 없고 추억의 물증들만 남았다. 말이 좋아 '살진 이슬'이지 발길에 채이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나날들 모여 길 떠난다.
석유 한 통, 아니 슬픔 한 줌이 저렇게 마딜 줄 몰랐다. 인부 하나가 치익- 젖은 성냥을 긋자 저마다의 내력이 심지가 되어 타오른다. 여럿이 타지만 불꽃은 하나. 그래서 모닥불인가. 더러 목메는 연기와 눈 매운 그을음도 있지만, 살아서 마지막을 춤추며 가노라고 '서로의 몸 으스러지게 껴안고' 하늘로 치솟는다.
제 몸 제가 사루어 가는 길이건만 저 천덕꾸러기들, 아직도 어둠 속에 남아 있을 상처 입은 손들을 위해 저마다 어둠 한 뭉텅이씩 지우며 간다. 좀더 남아서 누군가의 삶을 빛내주고 오라고. 삶과 영혼의 모든 건축은 상처 위에 세우는 것이라고, 어제부터 부쩍 입김 서리는 초가을 공터에선 지금도 활활.
반칠환 시인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