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35…낙원에서(13)

  • 입력 2003년 10월 7일 19시 30분


코멘트
나미코는 누운 채 위생 색으로 손으로 뻗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새어들었다. 열은 아직도 높을 텐데, 뜨거운 것인지 차가운 것인지 모르겠다…얼음을 만졌을 때처럼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혹시 이런 게 언니들이 얼이 빠졌다고 하는 걸까.

남자는 바지를 끌어올리더니 경례를 하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몸 조심하고 건강하게 지내시오."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죽을 상이다. 나미코는 남자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고 열 손가락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젖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이 남자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이 손가락 자국은 사라지지 않을지도….

다음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다. 벌써 끝난 건가? 오늘은 낮부터 손님이 들기 시작해서, 하나, 둘, 셋, 넷…열까지는 얼굴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 다음은 꾸벅꾸벅 졸았으니까…스무 명은 넘을 것 같다…아무튼 오늘은 이대로 자고…내일 아침에 일어나 열이 내렸으면, 우선은 목욕을 하자…열흘이나 몸을 씻지 못했다…지금 내 몸에 이가 얼마나 있을까…이도 암수가 있어서, 내 몸 여기저기서 교미를 하고 있겠지…빗어도 빗어도, 머리 뿌리에 서캐가 가득 꼬여 있다…유품으로 받은 후미코 언니의 갈색 카디건이 하도 눅눅해서, 불에 쪼여 말렸더니, 메리야스뜨기로 뜬 코 사이사이에서 이가 얼마나 많이 기어 나오던지…후득 후득 이가 불길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후득 후득 후득 후득…여름이면 바퀴벌레가 많아서 잠자기도 무서웠는데. 아침에 일어나 모포를 들추면 두 세 마리 튀어나온 적도 있었고, 심지어 머리칼 속에 기어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 익숙해졌다. 바퀴벌레도 이도 쥐도 남자도 아무렇지도 않다…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외로움도 다…이제는 다 괜찮다…그런데도 아직 어디선가 알지 못할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날카로운 이와 손톱으로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려고…괜찮아, 아무 것도 남지 않았으니까…무슨 일이 생긴들 새삼스럽게 잃을 것도 없다…내 인생은 낙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끝났으니까…그렇다면, 그렇다면 왜 시즈에 언니처럼 가위로 목을 찌르지 않는 거지? 후미코 언니처럼 허리띠로 목을 매지 않는 거지? 내 안에 아직 희망 나부랭이가 남아 있는 걸까?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