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 나의 인생]<4>뿌리치기 힘든 족쇄 '사교육비'

  • 입력 2003년 10월 8일 17시 26분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체에 다니다 15년을 가정주부로 지낸 이모씨(38)는 지난달 한 대학의 구내식당에 일자리를 구했다.

오전 8시 반에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하고 한 달에 65만원을 받는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45)이 월 320만원을 벌고 두 아들을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까지 잘 키운 그가 노동 시장에 다시 나온 이유는 갈수록 늘어가는 사교육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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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머니의 자식 사랑=한 달에 쓸 수 있는 220만원 가운데 4분의 1인 55만원을 학원비로 쓰는 것이 내내 부담스러웠던 이씨는 생활정보지에 난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하겠다는 만큼은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첫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 사교육비가 지금의 몇 배는 더 들 것 같아서 일찍 결심을 했습니다.”

1991년부터 13년째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45·여)는 고객의 노후설계를 해 주는 것이 중요 업무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 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경력이 쌓여 수입이 적지 않지만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 대학 2학년에 다니는 맏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1991년 딸이 아홉 살, 아들이 여섯 살일 때 일을 시작한 그는 번 돈으로 집 평수를 늘리고 두 아이의 사교육비를 대는데 모두 썼다.

“딸이 조금만 더 도와달라고 요청해 엄마로서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대학만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노후를 생각해 볼 작정입니다.”

▽사교육이 여성을 힘들게 한다=자녀를 기르는 데는 양육비라는 돈이 들게 마련이다. 또 자녀에 대한 한국 어머니의 헌신은 유명할 정도로 남다르다.

특히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사교육 경쟁 때문에 한국 어머니들은 자신의 인생 계획에는 전혀 없던 변신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남편 월급만으로는 ‘남들 하는 만큼’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들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말 현재 경제활동참가율(돈을 벌 의사와 능력이 있는 인구의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40대로 64% 수준이다. 참가율은 20∼24세 62.4%에서 30∼34세에 49.8%로 떨어졌다가 급격히 상승한다.

김종숙 여성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20대에 일을 하던 여성들이 결혼을 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30대에 육아를 마친 뒤 40대에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계획 없이 노동시장에 나온다”며 “이 경우 단순 노무직 등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녀 사교육비 때문에 어렵게 마련한 집을 팔거나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경우도 많다.

박모씨(43·여)는 2000년 맏딸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경기 광명시의 아파트를 팔고 서울 목동에 전세를 얻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1등을 독차지했던 딸은 학급에서 중간 정도 성적으로 처지며 우울증에 빠졌다.

팔고 난 아파트 값은 두 배로 올랐고 먼 직장을 출퇴근하게 된 남편도 부쩍 불평이 많아졌다. 결국 지금은 온 가족이 서로 반목하며 살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주부 조모씨(37)는 아홉 살 난 아들과 여섯 살 난 딸을 위해 월 190만원의 사교육비를 쓴다. 미국인 영어 회화에 학원 4, 5개는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고 일을 할 엄두도 안 나 친정과 시댁에 손을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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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자에 따르는 위험도 크다=위에 소개한 네 명의 주부는 모두 “아이들이 스스로 열심히 하려고 했고 나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생애설계와 자산운용의 관점에서 보면 자녀 분산투자의 원칙을 어기고 자녀 교육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고 자신의 노후 대비는 뒷전이라는 점도 같다.

어머니의 희생을 먹고 자녀가 훌륭하게 자란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투자는 없다. 그러나 자식농사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없다. 교육비에서 시작해 자녀 결혼자금 사업자금 등으로 이어지는 자녀의 요구에 마냥 희생만 했다가 비참한 노후를 맞기도 한다.

최모씨(70·여)는 평생 숙박업을 하며 모은 돈으로 두 아들을 공부시킨 뒤 급기야 사업자금으로 모든 것을 내줬다. 아들들이 사업에 실패하고 이민을 간 뒤 소식을 끊으면서 그는 15평 전세 아파트에서 어려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자식이 손을 벌리는데 부모가 어떻게 외면을 해요. 그저 철석같이 믿을 수밖에요.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잘 되면 자식 탓, 못 되면 내 탓이지 어쩌겠어요.”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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