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천년고도’ 시간여행 가자! 역사속으로

  • 입력 2003년 10월 9일 16시 08분


코멘트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주말에는 왠지 떠나야 할 것만 같다. 탁 트인 자연과 신선한 공기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 거기에 ‘천년의 역사’가 더해진다면…. 통일신라까지의 옛 이야기를 담은 삼국유사는 전국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국문학자 고운기씨와 사진작가 양진씨의 안내를 받아 여행을 떠나보자. 아니, 가보지 않아도 좋다. 삼국유사를 팔베개 삼아 빠져든 낮잠 속에서 둘러본들 어떠리. 다만 글을 다 읽고 난 뒤 짐을 꾸리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지 않기를. 기행문은 전국을 12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당 4, 5회씩 싣는다.》

경주에 갈 때마다 먼저 찾는 곳이 분황사다. 절도 절이지만 분황사 정문에서 황룡사터 쪽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그 뜻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지금 경주는 문화 엑스포가 열리면서 여느 때보다 분주하다. 우리의 고대사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게 부산한 가운데서도, ‘삼국유사’를 들고 떠나는 여행의 첫 기행지로 서슴없이 분황사를 택했다.

이곳은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의 일곱 가람 가운데 하나였던 곳. 왕족 출신의 승려 자장(慈藏)이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선덕여왕의 후원 아래 한껏 멋 부려 놓은 절이었다. 그러나 칠대가람(七大伽藍)으로 꼽히던 분황사의 위용은 사라진 지 오래다.

분황사는 경주의 시가지와 낮은 집들이 이어지는 주택지를 벗어나, 보문관광단지로 가는 큰길의 초입, 잠깐 한눈 팔다 보면 거기가 분황사인 줄도 모른채 지나치고 마는 작은 절이다.

▼관련기사▼
-‘부자의 情’ 묻어나는 분황사
-'여행지서…' 맡은 고운기-양진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황사는 경주를 보는 첫 단추이다. 반월성에서 시작하는 옛 경주는 그 앞으로 주거지가 형성되었고, 한가운데 황룡사를 두었다. 그 축의 마지막이 분황사다.

아쉽게도 반월성과 황룡사는 이제 터만 남은 채이다. 다행히 분황사는 거듭 짓기를 되풀이해, 몇 칸 절 집이라도 서 있고, 구운 벽돌로 쌓아올린 특이한 전탑도 3층까지는 남았다. 그래 거기 서서 옛 서울 경주의 희미한 자취를 다시 그려보는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반월성과 황룡사터 그리고 분황사는 경주를 관광하는 사람들에게 자칫 실망을 안겨 줄지 모른다. 허허벌판에 들어서자면 심심하고 무덤덤할 뿐이다. 그런데 거기에 신라 서울의 고갱이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본 만큼 알게 된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또 한번 참담해질 마음을 억누르고, 건물로든 탑으로든 무엇 하나 성하지 않은 분황사부터 들러보자. 그리고 쓰러진 전각을 세우고 탑을 일으키고 담을 둘러쳐 보자. 우리 마음의 스카이라인을 그려 거기에 끝내 어떤 형상이 떠오르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일 하나. 거기에 옛 신라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상상한다. 우리에게는 이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일연(一然)의 삼국유사가 있다. 이제 우리들의 기행을 이 책에 의존하여 다니려는 까닭또한 여기에 있다.

분황사와 관련하여 절절하기 그지없는 여러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남겨져 있다. 이곳에서는 향가 ‘천수대비가(千手大悲歌)’로 알려진, 눈먼 어린 딸의 빛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희명(希明)의 모정(母情)이 메아리쳐 들려올 듯하다. 또 설총(薛聰)이 아버지 원효(元曉)의 얼굴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놓고 예불을 드리러 갔더니, 어느 날 그 얼굴상이 아들을 향해 살짝 돌아보더란다. 모두 분황사를 무대로 하는 이야기다.

이제는 분황사 당간지주만이 집 잃은 아이처럼 서서 우리를 맞지만, 거기 서린 천년 세월의 남은 향기를 맡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분황사 문을 나서면 그들에게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황룡사구층목탑이 보였으리라. 해질 무렵, 황룡사 터에 무심히 남아있는 구층목탑 주춧돌 위에 앉거나 누워도 보면서, 푸른 하늘 저편 아스라이 떠 있었을 탑의 꼭대기를 떠올려 본다. 신라는 저렇게 파란 역사를 지닌 나라이다.

▽:촬영노트: 분황사 당간지주다. 절의 깃발을 세워 두던 돌기둥인데, 절 앞에 남아 있다. 저녁무렵 가로등 불빛을 받고 있는 분황사 당간지주는 낮에 보던 모습과 달랐다. 황룡사터 너머 남산 그림자도 아득했다. 샛별까지 반짝이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인공의 빛을 자연의 빛과 적절히 섞으면 신비로운 분위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3분, 5분, 10분…. 별의 궤적을 그려내기 위해 셔터를 열어놓고 시간을 바꿔가며 여러 장 찍었다.

오늘처럼 보름달 뜨는 밤, 달빛 아래서 사진 찍기를 시도해 볼 만하다. 달 뜨는 시간은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www.kao.re.kr)에서 알아볼 수 있다.

글=고운기 동국대 연구교수 poetko@hanmail.net

사진=양 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tophoto@kore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