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쌓으면 되지”라며 아버지는 침을 내뱉고는 누군가를 찾듯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비가 오면 흙이 흘러내려서, 들개가 파헤칠 수도 있어요.”
“그럼 항아리에 밀어 넣고 흙을 채우면 될 것 아냐. 이 근처에 두면 냄새가 날 테니까 리어카에 실어서 늪으로 가져가. 그리고 공중화장실이 한두 개 망가졌다고 대일본제국이 망하는 거 아니니까, 요란 떨지들 말고.” 촛불이 아버지의 눈에 위협의 불꽃을 댕겼다.
나미코는 고하나의 얼굴로 눈길을 떨어뜨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들 차려 입으니 청초한 숫처녀들 같군. 일한합병기념일에는 조선옷 입고 장사할 건가? 하하하하.” 아버지는 웃으면서 방을 나갔다.
위안부들은 어깨와 어깨가 맞부딪칠 만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량주를 나눠 마셨다. 누군가 아이고∼하면서 한숨을 쉬자, 아이고∼, 아이고∼하고 눈물 섞인 곡소리가 시작되었다.
안개처럼 옅은 구름이 흐를 뿐 하늘은 맑았다. 태양은 힘겨운 빛을 치마저고리 차림의 위안부들에게 비추고, 문 밖에 나가 햇볕을 쏘이는 일이 드문 그녀들의 얼굴은 더욱 창백하게 보였다.
새날이 시작되었다. 언니가 없는…나미코는 항아리 속에서 무릎을 껴안고 있는 고하나의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낙원에 온 지 5년인 세쓰코가 항아리 앞에 섰다.
“나무가 무쇠가 되도록 우리 목숨 지켜주고 복도 내려주고, 나쁜 일들은 다 몰아서 가다가 낙동강에 내다버리고, 제일 좋은 곳으로 가거라. 극락에 가서 편히 쉬거라. 우리들 고통까지 다 갖고, 낙동강에 내다버려라.”
위안부들이 리어카를 끌기 시작하자, 총검을 멘 감시병이 따라붙었다.
세쓰코가 리어카에 손을 대고 중얼거렸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어린 자식 두고 간다. 행방도 모르는 남편하고 불쌍한 자식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빌면서 나는야 간다.”
에헤요 어와영차, 위안부들은 목소리를 합해 흥얼거리면서, 고무장화 신은 발을 한걸음 한걸음 떼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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