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 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시집 ‘인류의 盲點에서’(문학사상사) 중에서
아가야, 아빠 손잡고 솜사탕 빨며 저 거울 함께 보는 아가야. 호랑이, 악어, 방울뱀이 사나워서 철책 속에 있는 줄 알았지? 나도 가끔씩 깜빡한단다. 나 자신 ‘가장 사나운 짐승’이어서 철창 밖에 있는 줄을 까맣게 잊곤 한단다.
무서운 호랑이가 가까스로 토끼 한 마리를 잡아챌 때에, 수많은 동물을 멸종시키는 모자 쓴 상냥한 짐승을 보았느냐. 잔인한 악어가 누 한 마리를 힘겹게 끌어당길 때에, 제 동족을 향해 무더기 포탄을 퍼붓는 정중한 짐승을 보았느냐. 제가 서 있는 땅 한 뼘, 제가 마실 구름 한 조각마저 더럽히는 넥타이 맨 짐승을 보았느냐.
아직은 저 거울 속의 주인공이 아닌 아가야. 네가 크면 무서운 사냥꾼이 되어주지 않으련. 저 우리 속에 갇힌 짐승들 말고, 우리 안에 뛰노는 사나운 짐승들 모두 몰아내주지 않으련.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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