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독서교실]'청소년 고민' 알기쉽게 해결책 시사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7시 28분


◇검정개 블래키의 우울증 탈출기/베브 아이스베트 지음 김은령 옮김/152쪽 8000원 명진출판사

고민이 있을 때면 나는 도서관 서가(書架)를 어슬렁거리는 버릇이 있다. 책 사이를 거닐다 보면 ‘우연히’ 내게 절실한 충고를 담은 책을 발견하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우연만은 아니다. 몸에 필요한 음식에는 자연히 입맛이 당기는 것처럼 내게 절실한 책은 ‘저절로’ 눈에 들어오고 손이 가게 되어 있다. ‘도서관은 해박하고 경험 많은 상담자’라는 말은 공연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갈등과 고민이 많다. 유능한 상담자는 충고를 자제하고 상대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끈다. 독서 지도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읽히지 말고 읽고 싶도록 만들자.

나는 교사가 직접 책을 추천하기보다 학생들에게 도서관 서가 사이를 거닐도록 하라고 권하고 싶다. 운동장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놀게 되듯이, 도서관은 학생 스스로 필요한 책을 찾아 읽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변변한 책도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알아서 읽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청소년 감수성에 맞게 그들의 문제를 다독일 수 있는 책의 전범(典範)으로 ‘검정개 블래키의 우울증 탈출기’를 들고 싶다.

블래키란 윈스턴 처칠이 자신의 우울증을 ‘검정개(Black Dog)’라고 부른 데서 따온 말이다. 블래키는 늘 혼자 지내며 모든 에너지를 고민하는 데 쓰는 우울증 환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는 블래키를 바라보며 독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듯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음을 깨달았다면 블래키의 친구, ‘해피(Happy)’의 충고도 귀에 쏙 들어온다. 어린 시절 심각하던 고민도 지나고 보면 우습듯,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대부분의 문제는 생각보다 별 것 아니다. 나아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약한 인간으로 매도될까 지레 겁먹지 말라고 조언한다. 현재의 괴로움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 뻔한 말 같지만 숫기 없는 청소년 블래키들에게는 절실하게 가슴에 꽂힐 만한 말들이다.

‘검정개 블래키…’의 장점은 이러한 진단과 처방을 제시하고 선택하게 할 뿐 훈계를 늘어놓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존심 세고 예민한 10대의 감수성에도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겠다. 예쁜 표지와 날씬한 분량, 그리고 재미있는 삽화 덕택에 한결 부드럽게 읽히는 맛이 있다.

심각한 얼굴로 서가 사이를 누비던 학생이 며칠 뒤 밝은 얼굴로 책을 반납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도서관 담당 교사에게 큰 기쁨이다.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 학교도서관 총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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