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가지. 그가 없었다면 우리의 잠자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캐나다의 심리학자 스탠리 코렌은 저서 ‘잠도둑들’에서 “예전에는 사람들이 하루 평균 9시간을 잤으나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후 수면시간이 7시간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그를 원망했다.
“절대 시계를 보지 말라”고 주위를 다그쳤던 에디슨. 그는 1931년 10월 18일 사망했다. 고무 대용 식물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에디슨은 기업형 발명가였다.
1870년대 후반 그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멘로파크 연구소 시절 그곳에서는 전신 전화 전구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발명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발명이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불편함이 무엇인지를 찾아냈고 ‘시장의 수요’를 읽었다.
그의 발명은 천재의 영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백번, 수천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했다. 그의 발명은 그야말로 99%가 ‘땀’이었다. 그래서 그는 “불가능한 일이란 어려운 일에 비해 단지 좀 더 시간이 걸릴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자비한 기업인이었다.
그는 최초로 전기의자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경쟁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전기회사는 직류를, 웨스팅하우스는 교류를 채택하고 있었다. 웨스팅하우스가 멀리까지 전기를 보낼 수 있는 교류방식으로 많은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게 되자 에디슨은 위기를 느꼈다. 그래서 꾀를 냈다. 교류발전기로 전기의자를 만든다면, 이 전기의자로 사형을 집행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교류전기가 위험천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쯤되면 “나는 단지 발명을 계속할 돈을 벌기 위해 계속 발명했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역사상 돈을 밝힌 진정한 천재는 없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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