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의 방향타를 잡는 정책포럼
“입장에 근본적 차이가 있어 쉽사리 타협점을 찾기는 어렵지만 파병 문제를 이렇게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구갑우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이라크 파병, 현안과 쟁점’을 주제로 15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2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제36회 참여사회포럼’. 세 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이었지만 하나의 결론은 없었다. 토론에서는 “한국이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정당한 파병 명분을 확보한다면 전투병 파병도 가능하다”(신지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는 의견부터 “세계 각국이 미국에 대해 이라크에서의 조기철수를 요구하는 상황에 파병은 안 된다”(정대연 전국민중연대 정책위원장)는 주장까지 다양한 견해가 제시됐다. 참여연대는 이미 이라크 파병에 반대 입장을 밝힌 상태. 그러나 산하 연구기관인 참여사회연구소는 이 문제에 대립되는 의견을 가진 지식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이날 포럼을 열었다. 참여연대의 강점은 이렇게 공개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수렴해 나간다는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00년 1월부터 거의 매월 한차례씩 한국사회 현안을 주제로 포럼을 열어왔다. 그간 다룬 주제는 빈곤, 낙천·낙선운동, 노동시간 단축, 공적자금의 조성과 운영, 비정규직 노동자, 투기자본, 민주화운동 보상, 정치자금, 대체 복무제 등 한국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망라한다. ‘건전한 시민사회 형성’이란 대전제를 두고 이념적 스펙트럼으로는 좌부터 우까지를 포괄하는 주제를 다뤄왔다. 특히 주요한 문제들은 1년에 3, 4회 개최되는 심포지엄에서 좀더 심층적으로 논의됐다.
▽누가 주도하나=참여사회연구소의 모토는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 김균 소장(고려대 교수·경제학)과 주종환 이사장(동국대 명예교수·경제학)을 비롯해 경제학에 박진도(전 소장·충남대) 박순성(동국대) 이병천(강원대), 사회학에 김동춘(성공회대) 김호기(연세대), 정치학에 정해구(성공회대), 철학에 홍윤기(동국대) 교수 등이 진용을 갖추고 있다. 김균 소장은 “참여사회연구소의 지식인들은 참여연대 내의 좌파”라고 말한다. 참여연대의 시민운동이 그릇된 대중운동에 휩쓸리거나 이권에 흔들리지 않도록 내부에서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이들은 상근 시민운동가들과의 ‘수평적 협력과 견제’를 통해 하나의 지향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2002년 2월에 8년간 사무처장을 맡아 온 박원순 변호사가 상임집행위원장으로 물러나고 시민운동가인 김기식, 박영선씨가 공동 사무처장으로 선임되면서 참여연대는 사실상 2기를 맞게 됐다.
참여연대 지식인 그룹도 1, 2세대로 나뉜다. 1세대는 박원순 변호사, 장하성(고려대), 조희연(성공회대), 손혁재(성공회대), 안경환(서울대), 박은정(이화여대), 한인섭(서울대), 김균, 박호성(서강대), 김대환(인하대) 교수 등이다. 2세대로는 70년대 후반∼80년대 중반 학번인 김호기(연세대), 김연명(중앙대), 김상조(한성대), 조국(서울대), 홍성태(상지대), 진영종(성공회대) 교수와 차병직 김남근 장유식 변호사 등이 꼽힌다.
▽소액주주운동에서 평화군축까지=10년 동안 이들이 한국사회에 제기해온 이슈는 열손가락으로 다 꼽기 어려울 정도. 그중에서도 참여연대를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소액주주운동과 낙천·낙선운동이다.
참여연대는 경제개혁의 핵심을 재벌개혁으로 판단하고 1997년부터 소액주주의 권익보호와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소액주주운동을 벌여 왔다. 장하성 교수(경영학)가 주도했던 이 운동은 소액주주들을 모아 부당대출, 불법적인 증여 등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었다.
소액주주운동에 반대하며 참여연대에 맞서 온 자유기업원의 김정호 원장(권한대행)은 “참여연대 같은 건전한 상대가 있어서 논쟁을 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들의 연합인 ‘총선시민연대’로 발전한 낙천·낙선운동은 시민운동의 새 장을 연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 운동은 합법적 틀 내에서의 개혁을 지향하던 참여연대가 위법적 운동을 폈다는 점에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최근 참여연대의 사업 중 새삼 무게가 실린 것은 평화군축. 북한 핵 문제, 파병 문제 등이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5월 평화군축센터(소장 박순성)를 발족시키고 이라크 파병 반대, 국방비 증액 반대, 평화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박 소장은 “한국사회에서 일상적 민주화를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분단’”이라며 “평화군축을 통해 기존의 ‘안보와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꿔보려 한다”고 말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단기 이슈보다 제도개혁 주력" ▼
내년 9월 창립 10주년을 맞는 참여연대는 이제 단기적 이슈보다는 ‘제도개혁’에 주력하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상임집행위원)는 “참여연대는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가 생산적 균형을 이루는 시민사회 주도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모색하고 있다”며 “그 전 단계로 제도개혁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개혁 운동은 부문별로 진행된다. 274개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연대’를 결성해 정치개혁 운동을 펴는 것을 비롯, 소액주주운동, 부패방지법 제정 운동,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실시 운동 등이 모두 궁극적으로는 제도개혁을 목표로 한 것이다.
국민연금제를 다루어온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김연명·중앙대 교수)의 그간 활동을 보면 참여연대가 제도개혁을 위해 얼마나 지속적으로 접근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사회복지위원회는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만들어 법률 개정을 국회에 청원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실질적 권한 강화와 이 운용위에 민간인이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연금 운용의 효율성과 투명성이 높아졌다. 연금의 효과적 운용이 안정된 시민사회를 만드는 복지제도 실현의 한 단계라고 보아 추진한 일이었다.
법안 통과 후에도 후속작업은 계속됐다. 2000년 1월에는 참여사회포럼 제1회 주제로 ‘한국의 빈곤실태와 빈곤퇴치 정책’을 잡아 적정 국민연금 수준을 논의했다. 김연명 위원장은 “경제학계나 경제 관련 부처에서는 공적 연금제도가 최저생계비만 보장해 주면 된다고 하지만 참여연대는 최소한 생활 유지가 가능한 급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정부가 ‘연금정책협의회’를 구성해 국민연금을 포함한 4대 공적 연금의 제반사항을 협의·논의하는 기구로 만들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한 ‘관치’ 운용을 부활시키려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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