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시리즈의 주인공 네오는 3편에서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하려 기계세계의 근원을 찾아 떠난다. 네오는 더 이상 자기 존재의 기원을 두고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그는 확신에 차 있다. 그러나 그가 위태로운 길을 자처하는 것은 스스로 구원자임을 자임해서가 아니다.
“난 그(The One·구원자)는 안 믿어. 그러나 네오는 믿어.”
네오에게 자신의 함선(艦船)을 거리낌 없이 내어주는 니오베(제이더 핀켓 스미스)의 말처럼, 네오는 굳이 구원자가 아니어도 좋다.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도 “네오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5월 국내 개봉한 ‘매트릭스2 리로디드’와 함께 제작된 3편은 전편에 비해 신화적인 분위기가 지배한다. 그의 모습은 고통스런 시련 속에서 더 강해지는 예수의 모습을 닮아 있다.
이 영화 속 네오의 액션과 비주얼은 모두 ‘신화’의 테두리 안에 있다. 네오는 이번엔 현실세계에서도 구원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신격화된 층위로 그 액션이 업그레이드된다.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최후 대결은 아마겟돈과 천지창조를 상징하는 장대비와 번개 속에서 이뤄진다.
20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만난 키아누 리브스로부터 작품 이야기를 들었다.
―네오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화, 자유의지, 선택, 그리고 사랑이다. 그는 여러 아이디어들을 인류에게 제공한다. 실제와 매트릭스와의 연관성에 대해.”
―당신은 ‘네오’에게서 뭘 배웠나.
“훨씬 더 사려 깊어졌다.”
―매트릭스의 정의를 내린다면.
“정의? 정의란 뜻의 정의는 뭔가. 관객들이 그 의미를 즐길 수 있다면 그만이다.”
―3편에서 네오의 눈이 멀어진 것은 어떤 시련을 말하나.
“쉽게 봐라. 가장 ‘맹목적인’ 선택을 한다는 거다. 사랑을 가리킬 때도 ‘눈이 먼다’고 하지 않는가.”
3편에서는 무엇보다 네오의 ‘자유의지(free will)’가 빛난다. 네오는 결국 두 눈을 잃는다. 이는 본능과 감각을 배제한 네오가 오직 자유의지의 명령에 따라 인류 구원을 달성하는 과정을 보다 신화적으로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두 눈을 빼앗긴 삼손이 하나님의 말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되었듯 말이다.
그러나 ‘신화성’이 영화에 상상력을 선물한 반면, 스타일과 구체성을 훔쳐갔다. 현실 속 남루한 옷차림의 네오는 전작에 비해 멋이 덜하다. 한 손을 뻗어 센티널(기계병사)들을 일거에 물리치는 그의 능력 행사는 종교적인 대신 긴장감이 좀 떨어지며, 네오와 트리니티의 대사는 애절하지만 더 신파적이다.
“넌 할 수 있어. 시온을 구해야 돼.”(트리니티) “너 없이는 못해.”(네오) “넌 할 수 있어.”(트리니티) “안돼.”(네오) “키스해줘. 한번만 더.”(트리니티)
‘균형(balance)’은 네오가 주장하는 평화의 필요조건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엔 일방적 말살과 기만보다는 균형이 필요한 까닭이다. 균형을 위해선 ‘소통’이 필요하다. 네오가 현실과 매트릭스 세계 모두에서 절대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양 세계의 공존을 상징한다. 균형은 네오와 스미스 사이에도 역설적으로 존재한다. 둘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 혹은 복수심을 메커니즘으로 해 살벌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네오와 스미스가 벌이는 최후대결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네오와 스미스는 어떤 비장의 카드를 꺼낼까. 그 해답은 모두 이 ‘균형’의 함수 속에 있다. 11월 5일 전 세계 동시 개봉.
버뱅크(미 캘리포니아)=이승재기자 sjda@donga.com
▼"닮았네" 빗속 결투장면 '인정사정…'과 비슷▼
○빗속 네오와 스미스의 결투=촬영에 8주가 소요됐다. 네오와 스미스는 번개 치는 하늘로 약 750m를 치솟아 오르기도 한다. 이 장면을 위해 대형 물방울을 만드는 특수장비가 동원됐다. 이 물방울은 일반 영화용 비 입자 보다 크기가 3배 이상 크고 반짝거리는 게 특징. 거리 양쪽에 3열로 도열한 수많은 스미스의 분신은 △스미스의 마스크를 쓴 대역배우들이 맨 뒷줄에 서고 △앞 두 줄은 ‘스미스 인형’들을 만들어 고개와 표정을 조종하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굵은 빗줄기 속에서 네오와 스미스가 주먹을 교차하며 서로의 얼굴을 강타하는 장면(사진)은 우리나라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매우 유사하다. 제작자 조엘 실버는 “워쇼스키 형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본 적이 없으며, 그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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