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민병찬/'문화재 公개념' 절실하다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8시 09분


일반인에게는 ‘잠깐의 소동’에 불과했는지 몰라도 필자에게는 떠올리기조차 두렵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사건이었다. 올 5월, 모든 국민을 경악케 했던 공주박물관 문화재 강탈 사건이 그랬다. 이는 박물관의 부실한 방범 설비와 직원들의 안일한 근무 자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돈-투기대상 시각 안타까워 ▼

그런데 모든 대형 사건들이 ‘시간’이라는 망각 속에 쉽게 묻혀 버리듯, 이 사건도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 사건을 잊을 수 없다. 애석하게도 사건 당일 야간당직을 했던 젊은 학예연구사가 급성 폐암으로 사건 발생 석 달 만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으로 범인을 잡고 잃었던 문화재를 되찾았지만 대신 동료를 잃은 것이다.

그 동료는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건강진단에서 “암이 의심되니 종합검진을 받아 보라”는 통보를 받고 진료예약을 해 놓았으나, 문화재 강탈사건 해결에 매달리느라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두 달 뒤에 비로소 병원을 찾았으나, 암세포가 이미 폐 전체로 퍼져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강탈사건을 막지 못한 1차 책임자였던 동시에 최대 피해자였던 것이다.

요즘 이 사건을 되새기다 보면, 국보를 강탈당하고 동료마저 잃었다는 사실 못지않게 나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문화재를 돈이나 투기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다. 문화재의 가치는 단순히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 문화재는 선조가 우리 모두에게 물려준 것으로, 우리도 잘 관리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박물관의 노력뿐 아니라 문화재를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문화재 ‘공(公)개념’이 자리 잡아야 한다. 요즘 부동산 값 폭등을 막기 위해 토지공개념 도입이 다시 거론된다고 하는데, 문화재야말로 공개념 도입이 절실하다. 문화재를 공적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정착되면 직접적으로는 문화재의 수난을, 간접적으로는 관련된 여러 선량한 사람들의 불행을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성문종합영어’의 저자로 유명한 송성문 선생이 평생 모은 문화재를 아낌없이 박물관에 기증했다. 송 선생이 기증한 문화재 중에는 국보와 보물이 26점이나 포함돼 있어 박물관 기증사에서 한꺼번에 가장 많은 국가지정문화재 기증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그가 기증한 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1월 2일까지 전시된다.

특히 송 선생은 이번 기증과 관련해 어떠한 요구 조건도 내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박물관에 일임해 관계자들을 감동시켰다. 이 문화재들은 연구자는 물론 일반 관람객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줄 것이며, 전시를 통해 영원히 그 뜻이 후세에 전달될 것이다.

송 선생의 아름다운 기증은 문화재를 돈으로만 보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문화재 공개념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사례다. 필자에게 송 선생은 학창시절 책을 통해 영어 문법의 이치를 가르쳐 주었고 나이 40을 바라보는 지금엔 문화재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나아가 그의 아름다운 문화재 기증은 강탈사건으로 상처받은 나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됐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 젊은 학예사의 영혼까지도 달래 줄 것으로 생각한다.

▼문화재 기증은 모두를 위한 것 ▼

공주박물관 문화재 강탈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전국의 박물관 관계자들의 자세 일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사회 전반에서 송 선생처럼 문화재를 공적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사고의 전환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약력 ▼

△1966년 생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한국불교조각사 전공) △1989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현재 ‘한국미의 재발견-조각’(공저) 출간 준비 중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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