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시영, '가을날'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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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한 마리가 감나무 가지 끝에 앉아

종일을 졸고 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차가운 소나기가 가지를 후려쳐도

옮겨 앉지 않는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거기 그대로 그만 아슬히 입적하시었다

-시집 '무늬'(문학과지성사)중에서

나도 저 잠자리 문상을 간 적 있었다. 시골길 억새풀 대궁에나 앉아서 이륙할 듯, 이륙할 듯 바람에 흔들리던. 살금살금 다가간 까치발 민망하게 꼬리를 움켜잡아도 미동도 않던. 게송마저 삼킨 좌탈(坐脫). 미물이어도 하늘을 꿈꾸던 날개가 두 쌍이다. 몸은 차갑게 식었지만 어떤 정신의 염열(炎熱)이 남아 있어 주검마저도 균형을 잃지 않는 걸까. 눈꺼풀 없는 천수천안의 겹눈이 죽어서도 아주 눈감지 않고 시방세계를 응시한다.

평생 하늘나라 꿈꾸던 잠자리는 왜 폭신한 구름밭 묘지 다 놔두고 땅으로 내려온 걸까? 삶이 꿈이고 죽어서 깬다는 뜻일까? 이불 한 채 요때기 하나 없이 바지런히 날아다녀도 잠자리라 불리던 잠자리. 어느 아득한 화원에서 보내온 조화일까? 서릿발로 지핀 다비식에 들판 가득 쑥부쟁이 만발한다. 곧 겨울이 내리면 떠들썩하던 들판도 잠자리.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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