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쪽방촌에 있는 광야교회의 ‘쉼터’를 찾았을 때 술에 잔뜩 취한 50대 남자가 쉼터 간사에게 “1만원만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간사는 “술 먹을 돈을 달라는 건데 이런 실랑이는 점잖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쪽방촌은 거의 매일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종일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거나 길바닥에 누워 잠자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46)는 “모래알에서 싹이 터야 사람 살 만한 곳이 된다”며 16년간 주민들을 보살피고 있다.
그는 최근 이곳 생활을 담은 책 ‘절망촌 희망교회 이야기’(규장)를 펴냈다. 이 책에는 그가 절망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과 뒹굴며 살아온 얘기가 절절하게 담겨 있다.
“1987년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전과 17범의 소매치기였던 ‘미남’이 ‘당신 1년만 여기서 버티면, 아니 1명이라도 변화시킨다면 그건 기적이야’라고 비웃었죠.”
한뎃잠을 자는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와 재우고 밥도 못 먹는 주민들에게 라면이나 쌀을 제공했다. 그의 헌신적 노력은 조금씩 결실을 맺어 지금은 150여명의 주민이 교인이 됐고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세운 쉼터엔 노숙자 1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아세아연합신학교 재학 중 길거리선교를 하다가 우연히 쪽방촌을 알게 된 그는 수많은 목회자와 교회 중 누구도 이 버려진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데 분개해 스스로 뛰어들었다. 예배 도중 찬송가 소리가 시끄럽다며 교회에 뛰어든 취객에게 몰매를 맞기도 하고 교회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며 포주에게 멱살 잡힌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인과 함께 전도하다가 “네 마누라하고 하룻밤 자는 데 얼마냐”는 희롱을 들었고 심지어 어린 아들이 “엄마도 아저씨 손님 받고 돈 벌어”라고 말할 때는 가슴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임 목사는 그들이 조금씩 절망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그는 현재 90평 규모의 쪽방촌 쉼터를 5층짜리 홈리스 복지센터로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 예배실, 노숙자 주거공간, 휴게실, 병원, 식당, 목욕시설을 갖춰 체계적인 복지활동을 벌이고 싶은 것이다.
“저는 항상 ‘제가 못해도 하나님은 하신다’고 믿습니다. 단지 저는 이곳 주민들의 영혼이 ‘도와 달라’고 소리 없이 울부짖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고 손 내밀어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이고 싶습니다.” 02-2636-3373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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