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9년 나일론 양말 시판

  • 입력 2003년 10월 23일 18시 38분


20세기 ‘기적의 섬유’ 나일론.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질기다’는 나일론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태어났다.

듀폰사의 연구실 책임자로 있던 월리스 캐러더스는 나일론을 어렵게 합성했지만 이 물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캐러더스가 실험실을 비운 사이 그의 조수는 유리막대로 시험관에 달라붙은 나일론 찌꺼기를 긁어내다 깜짝 놀랐다. 그 유리막대 끝에서 실크처럼 영롱하고 가느다란 실이 끝없이 나오는 게 아닌가.

듀폰이 나일론 개발을 위해 2700만달러를 쏟아부을 당시 미국 경제는 1929년 대공황으로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듀폰은 “불황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기초연구와 신제품 개발에 있다”며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1939년 10월 24일. 마침내 미국에서 나일론 양말이 시판된다.

나일론이 국내에 선보인 것은 1953년. 일본에서 나일론을 수입한 삼경물산은 “깁지 않은 양말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며 “주부들이 바느질에서 해방됐다”고 선언했다.

나일론 양말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재래종 참외를 개량한 노랑참외가 ‘나이롱 참외’로 불렸고, 화투놀이에도 ‘나이롱 뽕’이 생겨났다. 그러나 나일론은 폴리에스테르에 밀려나면서 ‘나이롱 환자’ ‘나이롱 대학생’ 같은 유행어가 말해주듯 ‘가짜’ ‘싸구려’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만다.

나일론(nylon)의 ‘나일(nyle)’은 니힐(nihil·허무)에서 유래한다. 발명자인 캐러더스의 비관적인 인생관을 빗댔다고 하는데, 불에 닿으면 그 화려하고 빛나는 때깔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속성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캐러더스는 1937년 필라델피아의 한 호텔에서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인조고무와 나일론을 거푸 개발했던 캐러더스. 그의 자살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지독한 형벌을 받아야 했던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저주’라 할 만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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