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51…잃어버린 계절(7)

  • 입력 2003년 10월 26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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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기와는 달리는 인력거 위에서 거리를 바라보았다. 한 여름의 강렬한 햇살 속에서 모든 것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폭탄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살육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고가씨네 끝없이 이어지는 산다화 울타리, 산다화, 산다화 핀 길, 모닥불이다, 모닥불이다, 낙엽 태우기, 하고 노래를 부르곤 했었지…잎과 잎 사이로 빛의 반점을 떨어뜨리고 있는 다가와씨네 마당 백일홍…. 딸 여섯을 줄줄이 낳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을 때 기념으로 심은 것인데, 그 쓰네오군도 올 봄에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니…어린 아기를 데리고 떠나야 하는 집은 정말 큰일이겠어, 배에서 전염병이라도 걸리면…아무 것도 모르는 채 느긋하게 가지를 뻗고 무성한 나뭇잎을 달고 있는 우에노씨네 사과나무들, 저 과수원 사과는 알은 작아도 새콤하고 달콤해서, 사과 철이 되기를 많이 기다렸었는데… 매일 두부를 사러 갔던 나카노 두부가게, 카스텔라가 맛있었던 오카모토 과자점, 매일 아침 주문을 받으러 와 주었던 어물전, 쇼타로가 다녔던 심상소학교, 심상 고등학교, 아야코하고 가즈에가 무척 좋아했던 히구치야의 1전에 두 개 하는 풀빵, 모든 것이 지금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원래 모습 그대로 있는데, 없는 것처럼 숨죽이고 있다. 기와는 스스로 술을 입에 대는 일은 없었지만, 잔치 자리에서 누가 술을 따라주면 거절하지는 않았다. 해는 아직 중천인데 술을 몇 잔이나 마신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파란 윗도리를 입은 인력거꾼이 숨을 헉헉거리며, 이거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습니다, 헉 헉 헉 헉, 우리들도 일본 거리가 텅 비면 가게 문 닫고 떠나야지요, 헉 헉 헉 헉, 나는 여기서 태어나서, 아버지 고향인 야마구치에 대해서는 얘기밖에 들은 게 없어요, 헉 헉 헉 헉, 그래도 핏줄한테 의지하는 수밖에 없죠, 정말 큰일입니다, 하고 말을 걸었지만, 기와는 가슴이 메어 뭐라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인력거꾼에게 영남루 아래서 기다리라 해놓고, 기와는 돌계단을 올라 제일 위에서 뒤돌아보았다. 강에서 아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조선말인지 일본말인지 구분은 안 되지만, 일본 아이가 섞여 있는 것은 아니다. 쇼타로와 가쓰에와 슈스케가 물놀이를 했던 저 강도 이제 완전히 조선 사람들 것이 되고 말았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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