履-밟을 리 削-깎을 삭 顚-엎어질 전
納-들일 납 薄-얇을 박 閥-벌열 벌
履歷書를 쓰는 계절이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청년실업이 늘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는데 올해는 극심한 불경기 탓에 사상 類例(유례)없는 취업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입사시험에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은 보통이니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한다.
履는 본디 ‘가죽신’을 뜻하는 말이었다. 削足適履(삭족적리)란 ‘발을 깎아 신에 맞춘다’는 뜻으로 변통이 없어 무리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또는 主客(주객)이 顚倒(전도)된 것을 뜻한다. 또,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참외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 것이며)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불필요한 행동으로 괜히 쓸데없는 疑心(의심)을 받지 말라는 뜻이다.
이처럼 履는 본디 ‘신발’의 뜻에서 후에 ‘밟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如履薄氷(여리박빙)이라면 마치 살얼음을 밟듯 위태로운 지경을 뜻한다. 또 履行(이행)이라는 말도 있다.
한편 歷은 지나온 자취, 곧 經歷(경력)을 뜻한다. 歷史(역사), 歷戰(역전), 來歷(내력), 遍歷(편력), 學歷(학력) 등 많다.
따라서 履歷이라면 자신이 지금까지 거쳐 온 學業(학업)이나 職業(직업) 등과 같은 經歷을 뜻하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적어 두는 것이 履歷書다. 예나 지금이나 관직에 나아가거나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來歷을 상세히 적어야 했다. 그래서 履歷書의 출현은 매우 오래 됐다. 중국 隋(수)나라 煬帝(양제) 때의 虞世基(우세기)는 官吏(관리)의 인사를 장악하고 있어서 權勢(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런데 그는 전형적인 姦臣(간신)이자 貪官汚吏(탐관오리)였다. 昇進(승진)을 심사할 때는 능력은 아예 보지도 않고 바친 賂物(뇌물)의 多寡(다과·많고 적음)에 따라 순위를 정했다. 그래서 賂物을 많이 바친 관리에게는 0순위를 주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예 승진심사에서 제외시켰다.
그는 그 표시를 제출한 履歷書에다 해두곤 했는데 別項(별항)에다 脚註(각주)를 다는 식으로 처리했다. 그리고는 붉은 색으로 별도의 표시를 했다. 즉 제 마음대로 履歷書의 내용을 脚色(각색)했으므로 이 때부터 履歷書를 脚色이라고도 불렀다.
물론 지금 履歷書를 그렇게 조작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아직도 能力보다는 學閥(학벌)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脚色이 아닌가.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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