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진한 꼬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내가 여자가 된 날’은 아홉 살이 되면 성인 여자로 취급하는 이슬람사회의 규범을 마치 동화처럼 그려낸 영화. 아홉 살 소녀와 젊은 여인, 그리고 할머니의 하루 등 모두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기 다른 이야기면서도 ‘검은 차도르’가 세 편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구성도 독특하지만 간결하고 시적인 화면도 매력적이다. 각 이야기 마다 평범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철학이 우화와 상징과 함께 버무려져 잔잔한 감동을 준다.
‘아홉 살’ 편이 끝나면 해안도로를 따라 여자들의 자전거 경주가 이어진다. 경주에 참가한 아후. 남편과 친정 식구들은 말을 타고 쫓아다니며 경주를 중단하라고 협박한다.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렸어’ ‘네가 타고 있는 건 자전거가 아니고 악마의 말이야’ ‘당장 네 삶으로 돌아와.’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페달을 밟는 아후는 이혼선고를 당한다. 자전거 경주가 그럴 만한 일이었느냐고? 아후에겐 그건 자유를 향한 경주와도 같다. 전통적 관습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세상에 마주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후의 용기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편은 ‘할머니의 꿈’. 바닷가 모래사장에 냉장고, 침대, 소파, 식탁, 옷장, 다리미대까지 난데없는 신혼살림이 늘어서 있다.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세탁기와 청소기가 돌아간다. 이 물건들은 평생 자신을 위해 뭘 가져본 적이 없는 후러 할머니의 못 다한 꿈을 나타낸다. 남편이 죽은 뒤 유산을 받은 할머니는 평소 간절히 원했지만 가져보지 못했던 물건을 사들인다. 할머니가 사고 싶은 물건이 떠오르면 손가락에 묶었던 헝겊 끈을 나중에 물건을 사면서 하나씩 풀 때마다 관객들은 덩달아 신난다.
이 영화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가족의 합작품이다. 이 가족은 부부와 두 딸, 아들까지 온 가족이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여자가 된 날’의 경우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각본을 쓰고, 그의 아내인 마르지예 매쉬키니가 감독을 맡았다. 딸과 아들은 스태프로 참여했다.
31일 개봉. 전체 관람 가. 딸 사미라의 ‘칠판’과 아버지 모흐센의 ‘사랑의 시간’도 2주 간격으로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잇따라 개봉된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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