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家, 외로워도 나의 길이기에…'삼소회'12인 '출가' 펴내

삼소회원들이 올 8월 인천 강화군 백련사에서 기도모임을 끝낸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오인숙 양요순 수녀, 혜성 스님, 최주영 수녀, 양도승 교무, 진명 스님. -사진제공 삼소회

“내 딸이 스님 되는 팔자로 태어나게 조상 묘를 쓴 적은 없다. 다리를 부러뜨려 평생을 먹여 살리는 한이 있어도 내 자식을 스님으로는 못 만든다.”

스님이 되겠다는 딸의 말을 들은 아버지의 반대는 단호했다. 어머니도 눈물로 호소했다. “큰딸이 스님이 되면 동생들 혼삿길 막힌다.”

그러고도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한 부모는 “정 절에 가고 싶으면 일주일만 다녀와라”고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러나 딸은 그 길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됐다.

스님이 됐든 수녀나 신부가 됐든 종교인들이 자신의 출가(出家) 과정에 대해 입을 여는 일은 드물다. 출가 과정에서 겪었던 가족과의 이별의 아픔, 개인적 번민 등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출가 전의 삶과 이미 단절했으므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런데 최근 가톨릭 수녀, 불교 비구니, 원불교 교무(정녀·貞女) 등으로 구성된 12명의 삼소회(三笑會) 회원들이 출가 당시의 얘기를 담은 책 ‘출가’(솝리출판사)를 펴냈다. 1988년 창립된 삼소회는 종교간 화합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모여 기도하는 여성 성직자들의 모임.

성직자이기 이전 한 가족의 딸이었던 이들의 출가에는 집안의 절절한 반대와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들의 아픈 마음이 오버랩된다.

원불교의 최형일 교무(경기 파주교당)는 “죽어도 교무가 되겠다”고 고집하다가 아버지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 부모님은 “출가(出嫁)해서 남자 밑에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설득했지만 딸의 결심은 변함없었다. 결국 딸이 집을 떠날 때 아버지가 “이제 부모 슬하에서 떠나니 다른 교무를 부모처럼 모시고 살아라”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서며 울음을 삼키는 대목은 가슴 저릿하다.

출가자 대부분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남들보다 심각하게 고민한 사람들. 무엇이 진정한 삶인가를 놓고 번민하다가 벼락을 맞은 듯 한순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경우가 많다.

삶이 허무해 자살까지 생각했던 양요순 마리비안네 수녀(서울포교성베네딕도 수녀회)는 올케의 출산 과정을 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내가 10편의 아름다운 시를 쓰느니 내 일생을 아름다운 시로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대학 졸업 후 수녀원의 문을 두드렸다. 혜조 스님(서울 청룡사)은 16세 때 “너는 중이 되어야 해”라는 한 스님의 말을 듣고 얼마 뒤 삭도(삭발용 칼)로 머리를 밀었다. 남들은 삭발할 때 많이 운다고 하지만 그는 그저 시원하기만 했다는 것.

출가 후에도 속세의 인연을 끊기는 쉽지 않다. 혜명 스님(전남 무안군 용주사)은 자신의 출가 후 병석에 들었던 아버지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출가와 아버지의 목숨을 바꿨다’는 회한에 빠지기도 했다. 출가 몇 년 후 딸이 있는 암자로 훌쩍 찾아왔던 진명 스님(불교방송 ‘차 한 잔의 선율’ 진행자)의 아버지는 누더기 적삼을 입은 딸을 보고는 몇 마디 얘기도 나누지 못한 채 황망히 산을 내려갔다. 한참 뒤 진명 스님의 할머니는 “네 아버지가 3일 밤낮을 자리에 누워 식음을 전폐하고 베갯잇을 적시는 것은 처음 봤다”고 그때의 일을 말해주었다.

책 출간을 주도한 김지정 교무는 “출가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종교간 화해에 대해 반추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며 “인세 수입은 이라크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쓰고 싶다”고 말했다.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