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딸아…’에는 30여년간 시인이 발품 팔아 수집한 209편의 전래 속요(俗謠)가 담겨 있다. 갓난아이를 토닥이며 불러주던 자장가부터 각설이 타령, 걸쭉한 육담까지 한데 모았다.
‘시아비 방구는 유세방구/ 시어미 방구는 알랑방구 … 시누이 방구는 개살방구/ 내 아들 방구는 대감방구/ 내 딸 방구는 연지방구/ 내 신랑 방구는 풍월방구/ 이내 방구는 가망(몰래)방구…’ (‘방구’ 중) 시인은 노래 뒤에 ‘억눌려 살아야 하는 며느리들이 이런 노랫말로 적개심이나 증오를 해소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설명을 붙여뒀다.
“속요는 모든 사람이 지은이인 그런 노래죠. 부르는 사람마다 자기 얘기를 더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가난과 차별대우, 박해 같은 서러움을 극복했지요.”
시인은 국비유학생으로 박사학위를 마치고 온 1975년부터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지금껏 2000명이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태교 자녀교육 등 일상사부터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지는 속요까지 기록되지 않은 채 전해지거나 사라져가는 생활사를 구술 받아 기록했다. 발단은 미국 유학 시절(플로리다 주립대) 인류학 수업시간에 접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었다.
“당시 세계의 학자들이 일본, 중국 연구는 한창 했지만 한국 연구는 거의 안 했죠. 나랏돈으로 공부를 했으니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빈대떡 한 장, 막걸리 한 병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길고 긴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차곡차곡 모인 ‘우리 것’은 유씨에게 큰 자산이 돼 주었다. 이 ‘보물단지’에서 유씨는 문인으로서 민속소설 ‘땡삐’(1993·자유문학사)를 비롯해 여러 편의 시와 산문을, 학자로서는 ‘한국 전통아동심리요법’(1985·일지사), ‘한국의 전통육아방식’(1988·서울대출판부) 등을 건져 냈다.
시인이 노래만을 다시 정리해 최근 ‘딸아 딸아…’로 엮은 것은 잊혀진 조상의 정서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노래가 동반했고, 그 노래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진하게 배어났다.
“박재삼 시인은 ‘이야기는 거짓이고 노래는 참이다’라고 자주 말했어요. 노래를 듣고 눈물이 나는 것은 그것이 ‘진짜’이기 때문이겠죠.”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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