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를 쓰면 손가락을 자르겠다"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4시 55분


“만약 아내가 죽는다면 다시는 시를 쓰지 않으리"

시 '山門에 기대어'를 통해 먼저 죽은 동생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표현했던 송수권 시인(64·순천대 교수)이 이번에는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아내 김연엽(53·金蓮葉)씨에게 바치는 한 편의 詩로 읽는 이의 눈시울을 붉게 하고 있다.

송 시인은 아내의 이름을 딴 시 ‘연엽(蓮葉)에게’에서 ‘…그 蓮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라며 절규했다.

그는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 자신의 아내에게 피를 나눠준 서울 동대문·종암·성북경찰서 의경 18명에 대한 감사의 글을 올리면서 덧붙여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노래한 시를 공개했다.

시인의 아내는 지난 5월 백혈병에 교통사고로 인한 과다 출혈로 서울 소재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 때 의경들이 피를 나눠줘 목숨을 구했다.

시인은 “아내는 어려운 시절 30리 길을 걸어서 수박을 이고 날라 나를 시인으로 만들더니 28년간 보험회사를 다니며 나를 또 다시 교수로 만들었다”면서 “전문학교(서라벌 예술대학 문창과)를 나와 학위조차 없는 내가 순전히 아내의 노력만으로 시를 써서 국립대학교 교수가 된 1호 시인이 됐다”고 밝혔다.

시인은 그러나 “만약 아내가 죽는다면 다시는 시를 쓰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때도 다시 시를 쓴다면 도끼로 나의 손가락을 찍어버리겠다”고 아내의 병상에서 절필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그는 “시란 피 한 방울 보다 값 없음을 알았다”면서 “그 의경들이 달려와서 주고 간 피가 언어로 하는 말장난(詩)보다 진실이며, 그 진실은 언어 이상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2억5000여만원에 달하는 수술비가 부담스러워 골수이식을 거부하는 아내에게 “당신이 숨을 거두면 시를 쓰지 않겠다”며 간절하게 설득한 끝에 다음달 김씨의 남동생 인태(47)씨의 골수를 이식 받기로 했다.

아내 김씨는 그동안 "2년 후면 당신도 정년퇴직인데, 당신 거지 되는 꼴을 어떻게 봐요. 그게 1억이 넘는다는데…"라며 극구 이식을 거부해 온것으로 알려졌다.

194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송 시인은 7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산문에 기대어’ ‘꿈꾸는 섬’ 등 다수의 시집을 발표했고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아내에 바치는 시와 편지 전문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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