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을 꽤나 좋아했다. 할머니는 요리솜씨가 아주 좋아 토마토소스나 마요네즈로 파스타를 뚝딱 만들어 내거나 해물요리를 5분 안에 만드셨다. 납작하거나 길고 굵은 모양 등 다양한 파스타의 면발을 만드는 장면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1959년 나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광주에 있는 살레시오 고등학교에 영어와 라틴어 교사로 부임했다. 이때 이 학교에는 이탈리아 출신 교사들이 많아서 나는 그들에게 이탈리아어를 배우기도 했다.
이탈리아어를 말할 수 있게 된 뒤 고향인 미국에 갔을 때 92세의 할머니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할머니는 처음으로 내게 속엣말을 털어놓으셨다. “이탈리아에 가면 나의 언니를 만나줘.” 그래서 만난 이모할머니는 96세였는데도 너무도 정정했다. 그때 손수 만들어 주신 스파게티도 정말 맛이 좋았다.
한국생활만 벌써 45년째인 나는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울 때면 종각역 인근에 있는 ‘뽀모도로 종로점(02-738-1991)’을 찾는다. 내가 소속된 성당은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지만 목요일마다 명동성당에서 고백성사를 받기에 이곳을 자주 찾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스파게티 전문점이 많지만 이곳만큼 합리적인 가격대에 이탈리아 정통의 맛을 내는 곳은 흔치 않다.
된장국, 김치 등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먹는 나지만 뽀모도로에서는 ‘펜네’에 와인 한잔을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한다.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펜네에 얹어 내는 파스타는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파스타 중 하나이다.
이곳의 사장은 신라호텔 출신으로 이탈리아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토마토는 반드시 이탈리아 남부산을 쓰는데 색상이나 맛, 당도에 있어 다른 산지의 것과 다르다.
이탈리아에서는 스파게티가 단품 음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코스 요리 가운데 ‘전채’에 해당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한국에 오래 살면서 나도 스파게티를 하나의 요리로 먹고 있다.
올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이곳을 빌려서 성당 사람들과 함께 ‘파스타 파티’를 한번 즐겨볼까 한다.
도요안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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