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번역가 8인의 '출판 공작소'…궁리닷컴 멤버들의 '아지트'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28분


‘따로 또 같이’ 일하며 지식 네트워크를 확대해 나가는 젊은 번역자들에게서 출판문화 업그레이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석봉 이한음 표정훈 이민아 당연증 전대호씨. -안철민기자
‘따로 또 같이’ 일하며 지식 네트워크를 확대해 나가는 젊은 번역자들에게서 출판문화 업그레이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석봉 이한음 표정훈 이민아 당연증 전대호씨. -안철민기자
29일 오후 6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한 오피스텔.

소장(少壯) 번역가 4명의 공동작업실인 17평짜리 오피스텔이 북적거렸다. 작업실의 ‘공동주인’인 이민아(38) 이한음(37·소설가) 장석봉(37) 표정훈씨(34) 외에 또 다른 번역가인 당연증(37·공인회계사) 전대호씨(34·시인) 및 ‘궁리출판사’ 대표 이갑수씨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달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둘러보고는 프랑스 파리에 들렀어. 센 강변에 있는 헌 책방에 우리나라 책이 딱 한 권 있더라. 1971년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보울링’.” (표정훈)

“도서전에서 수전 손탁 봤니? 귄터 그라스는?” (이민아)

“아니. 그 대신 콧수염 기른 무하마드 알리 봤어. 자서전 냈더라고.” (표정훈)

공식적으로 이날 모임은 궁리출판사 기획위원 직함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한 달에 두 번씩 갖는 정기회의. 그러나 실제로는 ‘기획을 빙자해’ 주제도, 시간제한도 없이 각자 가진 정보들을 쏟아내며 한판의 지적(知的) 브레인스토밍을 벌인다.

“올해 번역해서 얼마나 벌었느냐”는 등 프라이버시를 묻는 질문부터 요즘 국내 문학창작이 부진해 출판사들이 저작권 에이전시에 외국소설 문의를 많이 한다는 얘기, 괜찮은 국내 출판물은 저작권료 2000달러 수준에 중국에 팔린다는 정보, 소설가 김모씨가 매일 10km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문단 안팎 이야기까지 이들의 대화 주제는 전방위로 뻗어나간다.

이날 뒤늦게 참석한 장석훈씨와 불참한 황현숙씨를 비롯해 8명의 번역가가 뭉친 것은 1999년. 평소 이들과 가깝게 지내던 출판인 이갑수씨가 궁리출판사를 차린 뒤 이들은 ‘회의’ 형식을 빌려 매주 한번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모임 시작 1년여 만에 이들은 출판 학술 문학 등을 주제로 국내외 소식들을 정리 게시하는 ‘궁리닷컴(www.kungree.com)’ 사이트를 열었다. 올 초 이 중 4명이 신촌에 ‘따로 또 같이’ 일하는 공동작업실을 마련한 것이다. 이한음씨는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일하다보니 의문이 생기면 물어볼 수 있어 좋고, 자극도 된다”고 말했다.

번역가로서 이들은 과학(이한음) 동물(장석봉) 등 각자 전문분야를 갖고 있으며 번역할 가치가 있는 해외도서를 직접 찾아 출판사에 제시하는 등 활동영역을 출판기획으로까지 넓히고 있다.

최근 장석봉씨가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의 동물기를 번역 출간했고 이민아씨의 추천으로 2000년 제인 구달의 ‘Reason for Hope’(한국어판 제목 ‘희망의 이유’)가 국내에 소개됐다.

문학평론가 장은수씨(황금가지 편집부장)는 “출판 연구 집단의 필요성이 시급히 요청되는 국내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번역능력이나 책을 골라내는 감각 모두 1급으로 꼽히는 이들의 공동작업은 출판의 수준을 높이고 독자에게 호소력 있는 출판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커뮤니케이션 연구자인 피에르 레비(캐나다 퀘벡대) 교수가 언급한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우리의 이상(理想)이죠.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분배 교환하는 ‘네트워크화된 지성’으로 자리 잡는 것 말입니다.” (표정훈)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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