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세대를 가로지르는 번역의 정신, 쿨'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7시 15분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 쿨/딕 파운틴 외 지음 이동연 옮김/212쪽 9500원 사람과책

뻑뻑한 단어로 쿨을 정의하면 ‘권위자에 대한 거부를 표현하기 위해 개인이 선택한 대립의 태도’, ‘개인적 반항의 영구적 상태’, ‘당대 주류 문화에서 정당성을 얻지 못하거나 적용되기 어려운 신념’, ‘대안적이고 비공식적인 사회화 과정’ 등등이다. 키워드는 쿨한 태도의 특징을 ‘나르시시즘, 역설적 초연함, 쾌락주의’라고 정의하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이런 표현이 대학원생들이나 알아들을 언어로만 들린다면 ‘자뻑(자아도취)에 빠져 있지만, 태연한 척하면서 방탕하게 살아가는 태도’ 정도로 번역할 수도 있겠다. 이런 태도에 대해 반역, 일탈 등의 진부한 단어를 동원하여 ‘쿨이란 권위와 금기에 대항하는 태도’라고 재확인하는 것은 이미 철 지난 일이리라.

책에서 정작 흥미로운 부분은 쿨의 역사를 서술한 2장부터 5장까지다. 쿨한 태도의 기원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쉽게 말해 미국 흑인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팩트’지만 저자들은 이를 서아프리카의 요루바족의 문화까지 소급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흥미를 끄는 서술임은 틀림없다.

요약한다면 쿨한 태도는 흑인의 태도로부터 청년세대의 태도로, 그리고 (펑크의 경우) ‘노동계급청년’의 것으로 시대별로 지배적 양상을 취하면서 변해 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쿨 재즈, 사이키델릭, 펑크, 힙합 같은 대중음악의 문화적 의미가 재조명되고 대중문화의 여타 분야들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또한 이피(Yippie, 1960년대 후반의 젊은 반전주의 그룹)나 ‘상황주의’같은 뉴 레프트들의 실천에 대한 분석도 드문드문 등장하면서 20세기 역사에 대한 쿨한 관점의 대안적 서술이 전개된다.

저자들의 입장은 ‘쿨’을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일까.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쿨한 태도가 소수자의 태도가 아니라 다수자의 태도가 되었다는 점은 서양 사회를 조금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즉 쿨한 태도는 1960년대 이래 반역자들의 전유물을 넘어 이제는 기업과 미디어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은 ‘쿨한 소비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과 더불어 쿨과 정치(학)와의 관계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문화정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성 사회의 지배적 윤리에 대항하는 쿨의 매력을 인정한다. 문제는 쿨한 태도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아서 정치가 다루기에는 너무 복잡 미묘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쿨한 태도에는 진지한 도덕적 교화가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Cool Rules’라는 원제를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이라고 번역한 것은 농담처럼 들린다. 우리 주위에서 ‘쿨하다’는 단어가 이 책에 나오는 의미와는 영 다르게 사용되는 현실도 농담이 아닐 수 없듯….

신현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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