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도덕적 동물'…일부일처제의 심리학적 의미는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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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동물:진화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본성/로버트 라이트 지음 박영준 옮김/672쪽 2만5000원 사이언스북스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는 과학 저술가로 부상한 저자의 ‘도덕적 동물’은 국내에서도 한동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회 생물학적 연구와 맥을 잇고 있는 책이다. 그간 발간된 책들이 사회 생물학 이론서에 해당한다면 라이트의 책은 이들 이론의 ‘종합 대변’을 자처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신 다윈주의 사회과학, 즉 사회생물학 이론에 비판이 쏟아진 이유는 ‘신 다윈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폐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여기서 파생된 편견 때문에 신 다윈주의 사회과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 이론을 자세히 소개하는 방식으로 일반 대중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홍보하겠다고 나섰다.

책 곳곳에서 찰스 다윈에 대한 심리 분석을 곁들이며, 저자는 ‘설명간의 연결 고리가 모호하지 않은’ 다윈주의에 따른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성 심리, 사랑, 결혼, 이타심, 경쟁, 이기심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간결하고 명쾌한 문체로 드러낸다.

이 설명에 따르면 성에 대해 남성이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를 통해 유전적 유산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연 선택의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제도인 일부일처제는 성적인 대상을 취하기에 유리한 지위에 있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타협의 산물이다. 성적 재산을 남성들이 균등하게 갖게 됨으로써, 유전자 보전이라는 목표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덕적 가치로 흔히 이야기되는 호혜적 이타주의 역시 진화심리학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개인 유전자의 번영을 위한 전략 결과로 해석한다. 즉, 최초의 이타주의 유전자가 자신의 번식을 위해 친족으로 향해졌고, 이로부터 늘어난 가족을 통해 점차 번식된 결과라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조상 환경’ 역시 인간 심성의 진화에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일부일처제에서 느끼는 여성의 불만이 남성들과 달리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조상들의 환경 속에서 자식이 있는 여성이 새 남편을 찾는 것이 유전적으로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명쾌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라이트의 진화심리학은 독자들,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많은 의문을 남긴다. 사회 문화적 차원의 다양한 층위로 여성 심리를 이해하는 기존 이론과 달리 진화심리학에서는 오직 한 가지 설명만이 존재한다. 남성의 유전자 번식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여성의 성 심리, 행동이 자연 선택을 통해 미리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것.

심지어 ‘강간’ 문제도 간단히 진화생물학적 산물로 치부된다. 강간은 어떤 남자든지 그가 속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용기를 잃게 하는 피드백을 충분히 받았을 때 결국 채택하게 되는 전략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심리학의 인문학적 토대를 비판하면서, 진화생물학이라는 ‘객관적 자연과학’에 입각하고자 하는 진화심리학이 내놓을 수 있는 이론의 한계일 것이다.

박진희 동국대 강사·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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