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전통극의 랩버전?…‘토리극’ 정약용 프로젝트 화제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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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의 맛깔나는 음율을 대사에 녹인 ‘정약용 프로젝트’. -사진제공 정동극장
한국말의 맛깔나는 음율을 대사에 녹인 ‘정약용 프로젝트’. -사진제공 정동극장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속에 자진모리장단에 어깨를 들썩거리는 ‘피’가 흐른다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랩을 웅얼거리고 힙합 리듬에 몸을 흔드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젊은 세대는 한국의 전통 연희라고 하면 판소리같이 진지한 공연을 떠올리고는 선뜻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적 전통에도 랩이 있고, 힙합이 있다. 8일부터 막을 올리는 극단 아리랑의 ‘정약용 프로젝트’(극본·연출 방은미)는 한국말의 강약과 운율의 묘미를 대사에 살려낸 연극이다. 대사는 마치 랩처럼 리듬을 타고 전해지고, 배우들은 연방 가볍게 몸을 흔들며 분위기를 살린다. 장단이 다른 말들이 곧 배우의 대사가 된다. 대사 중간중간 끼어드는 북장단은 흥을 한층 돋우고, 배우들이 합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신명이 난다.

랩에 비유했지만, 이 연극의 대사는 엇박자로 나가는 랩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적 리듬이 느껴져 오히려 살갑다. 말에 억양이 있고 고저가 있어 대사가 노래하듯 미끄러지는 품이 그 내용을 미리 알고 있다면 쉽게 따라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생소하지만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런 연극의 양식을 극단은 ‘토리극’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의 전통 노래(소리)에는 꺾거나 흔들거나, 급하게 높아지거나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이 특징을 ‘시김새’라고 하는데, 이 시김새를 구사하는 방식이 바로 ‘토리’다. 대사 자체가 노래처럼 이어지기 때문에 이 연극은 대본에 말의 장단이 표시돼 있다. 배우들은 대사뿐 아니라, 대사의 장단까지 모두 외워 공연을 한다. 토리극은 김만중씨(중앙대 연극대 강사)가 한국의 전통 연극 양식을 연구해 극단 대표인 방은미씨와 함께 만들어냈다.

형식이 생경하다고 해서 섣불리 ‘재미’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라고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정약용 프로젝트’는 2001년 11월 대학로에서 초연된 뒤 관객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여러 차례 재공연을 가졌던 작품이다.

연극은 다산 정약용과 약전, 약종 3형제의 개혁사상과 형제애를 19개의 에피소드에 나눠 담았다. 이계심의 민란에 이어 정약용이 곡산 부사로 부임해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고, 모함에 의해 유배당하고 해배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연극에 나오는 노랫말은 모두 정약용이 지은 시로 구성됐다. 작품에선 익살과 감동이 교차해 재미를 더해준다. 30일까지 서울 정동극장. 화∼일요일 오후 7시반. 2만∼3만원. 02-751-1500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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