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뇌동맥꽈리(뇌동맥류)를 일컬어 ‘뇌 속의 시한폭탄’이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매년 1만여명의 환자가 발생해 이 중 절반 정도가 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뇌동맥꽈리는 일단 터지면 3분의 1 이상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그러나 미리 ‘뇌관’만 제거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병이기도 하다.
▽뇌동맥꽈리란=뇌혈관 벽이 약해져 늘어나면서 꽈리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 것을 말한다. 뇌혈관이 갈라지는 부위는 솟구치듯 밀려오는 피의 압력을 가장 세게 받는다. 그런데 혈관 내 말랑말랑한 ‘탄력섬유’ 조직이 손상됐을 경우 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꽈리 모양으로 튀어나오면서 생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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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경화, 혈관퇴행 등이 원인이 돼 생기는 뇌동맥꽈리는 평생 터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특별한 증세도 없다. 그러나 절반 정도는 점점 부풀다 ‘꽝’하고 터진다. 종이에 잉크가 물드는 것처럼 뇌를 둘러싸고 있는 막 아래로 피가 새어 나오면서 뇌출혈을 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3분의 1이 바로 사망하며 3분의 1은 병원까지 후송되더라도 의식불명 등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일단 출혈이 발생했다면 치료를 해도 50% 정도는 각종 신경학적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30% 정도만이 출혈 이전의 삶을 찾을 수 있다.
▽증상과 진단=뇌동맥꽈리는 터지기 전에 특별한 증세가 없지만 살짝이라도 터지면 징후가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증세가 두통. 환자들은 “내 살면서 이렇게 아픈 두통은 처음이다” “밤이 되면 뒷머리를 방망이로 내려치는 것 같다”며 통증을 호소한다. 일반적인 두통은 아픈 증세가 서서히 심해지지만 뇌동맥꽈리가 터졌을 때의 두통은 갑작스럽고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다.
이때 진통제로 대충 때우는 환자가 적지 않은데 치료시기를 놓쳐 불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40세 이후 갑작스러운 두통이 발생했다면 신경외과 전문의의 검진을 받는 게 좋다. 이 밖에 뒷목이 뻣뻣해지거나 토하는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뇌동맥꽈리가 터졌다면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95% 이상 진단이 가능하다. 꽈리 파열이 진단되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사타구니 부근에 카테터(도관)를 삽입하는 뇌혈관조영술을 실시한다. 최근에는 3차원 CT로 뇌동맥류 파열을 찾아내기도 한다.
뇌동맥꽈리가 터지기 전에 발견하려면 뇌 종합검진이 필요하다. 특히 뇌질환 가족력이 있는 경우 발병 확률이 몇 배 높기 때문에 검사는 필수적이다. CT 이외에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이나 자기공명뇌혈관촬영(MRA)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치료법=꽈리의 지름이 5mm 이하일 경우 앞으로도 터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당장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관찰은 계속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대표적인 수술법은 결찰술. 머리를 절개해 뇌를 좌우로 벌린 뒤 안쪽에 숨어 있는 뇌동맥꽈리를 찾아 부풀어 오른 밑 부분을 특수 클립으로 막는다. 확실하게 처치를 할 수 있지만 수술이 커지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사타구니 주변 동맥으로 카테터를 삽입, 백금코일을 집어넣어 뇌까지 밀어올린 다음 뇌동맥꽈리 부위에 다다르게 한 뒤 전기를 흘려 부풀어 오른 부분을 모두 메워 터지지 않게 하는 ‘코일색전술’도 많이 시술되고 있다. 수술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모든 경우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60대의 뇌동맥꽈리 극복기▼
김성모씨(가명·63·충북 영동군)는 호젓하고 여유로운 산골 생활이 즐겁다. 3주 전 산비탈을 내려가던 차에 펑크가 나면서 조금 다쳤지만,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팔과 어깨가 뻐근하지만 그래도 산골 생활이 좋다.
그러나 김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지난해 병원에서 뇌동맥꽈리가 발견됐을 때의 아찔함이란….
김씨는 두통이나 어지럼증 등 어떤 증세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꽈리가 터지지 않았기 때문. 당연히 김씨는 꽈리가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김씨는 6·25전쟁 때 혈혈단신 월남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북한에 남아있던 부모와 친척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부모, 남동생 모두 뇌동맥꽈리가 터져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김씨가 뇌 검사를 받기로 결심을 한 계기였다.
김씨는 서울 가톨릭대 성모병원을 찾아 자기공명뇌혈관촬영(MRA)을 받았다. 놀랍게도 뇌 좌우에 1개씩 2개의 뇌동맥꽈리가 있었다. 특히 오른쪽의 꽈리는 많이 부풀어 있는 데다 축 늘어져 있었다.
지난해 10월 첫 수술. 왼쪽 뇌동맥꽈리를 찾아내 클립으로 ‘봉합’했다. 수술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리고 4월 두 번째 수술을 통해 오른쪽 뇌동맥꽈리도 안전하게 봉합했다.
지금 김씨는 4주에 1번씩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는다. 앞으로 10개월을 먹어야 하지만 김씨는 지금의 평화를 얻기 위한 ‘수고’쯤으로 여긴다. 그는 행복하다.
“설마 하다가 큰일 납니다. 만약 가족이나 친척 중에 과거 뇌혈관 질환자가 있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으세요.”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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