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유윤종/한 무대 선 '187세'의 두 명인

  • 입력 2003년 11월 3일 18시 15분


지난달 31일 ‘대를 잇는 예술혼’ 무대에서 후배들과 ‘영산회상’을 연주하는 김천흥(왼쪽 앞), 성경린 선생(오른쪽 앞). -사진제공 박옥수
지난달 31일 ‘대를 잇는 예술혼’ 무대에서 후배들과 ‘영산회상’을 연주하는 김천흥(왼쪽 앞), 성경린 선생(오른쪽 앞). -사진제공 박옥수
국악계 최고 원로인 심소 김천흥(心韶 金千興·94) 선생과 관재 성경린(寬齋 成慶麟·93) 선생.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187세. 77년 지기인 두 사람이 모처럼 한 무대에 섰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열린 ‘2003 대를 잇는 예술혼-명인의 후예들’ 마지막 날 공연.

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 기능보유자인 두 명인은 ‘영산회상’ 중 ‘하현도드리’에서 ‘군악’까지의 대목을 연주했다. 심소는 양금을 앞에 놓고, 관재는 거문고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대금명인 김응서, 피리명인 정재국씨 등 후진들도 무대에 함께 올랐다. 낭랑하고 맑은 소리가 무대 위에 가득 울려 퍼졌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무대 뒤로 퇴장하는 두 명인을 향해 몇몇 관객들은 ‘건강하세요’ 라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날 만난 제자들은 50, 60년대까지만 해도 두 명인이 종종 한 무대에 섰지만, 최근 수십년 동안은 한 무대에 선 적이 없다고 말했다. 두 명인이 처음 만난 것은 1926년. 왕실 음악을 전수하는 ‘이왕직아악부’에 관재가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심소는 4년 전부터 이미 정악을 배우고 있었다.

“매일 같은 직장에 출퇴근하며 형제처럼 지냈죠. 경력으로는 내가 선배지만, 서로 배우는 관계였습니다.”

공연 뒤 분장실에서 만난 심소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두 사람이 도봉산을 함께 오르곤 했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함께 공연하겠소. 이렇게들 좋아하시는데….”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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