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씨, 한국사 5000년 집대성 10년 노력 결실

  • 입력 2003년 11월 3일 18시 15분


이이화씨가 경기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마을 뒤 단풍이 한창인 오솔길을 거닐고 있다. 집에서 아차산으로 향하는 이 오솔길 산책은 고통스러웠던 ‘한국사 이야기’ 집필 기간 중 몇 안되는 위안거리 중의 하나였다. -김미옥기자
이이화씨가 경기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마을 뒤 단풍이 한창인 오솔길을 거닐고 있다. 집에서 아차산으로 향하는 이 오솔길 산책은 고통스러웠던 ‘한국사 이야기’ 집필 기간 중 몇 안되는 위안거리 중의 하나였다. -김미옥기자
재야 사학자 이이화씨(66)가 총 22권에 이르는 ‘한국사 이야기’를 마침내 탈고했다. ‘한 사람이 일관된 역사관으로 재미있는 통사를 써 보지 않겠느냐’는 한길사의 기획을 받아들여 1994년 고대사를 쓰기 시작한 지 10년 만의 일이다. 대학 졸업장도, 학위도 없어 마땅히 부를 직함이 없는 그 혼자서 5000년 역사를 방대한 전집 형태로 정리하는 일에 도전해 끝을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탈고한 부분은 20∼22권에 해당하는 광복 직전까지의 식민지 시기. 이 세 권은 내년 3월경 출간된다.

이씨가 22권의 통사를 써내려 가는 동안 일관되게 견지한 기준은 세 가지였다. 첫째, 역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둘째, 대결보다는 타협의 원리를 강조한다. 셋째,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활사를 기록한다.

“역사 서술에는 주관적 사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애썼습니다. 예를 들어 식민지시기를 ‘일제강점기’라고들 하는데 나는 ‘일본 식민지’ ‘일본 파시즘’ ‘일본 제국주의’란 좀 더 객관적인 용어를 택했습니다.”

독립운동사를 서술하는 대목에는 사회주의자들의 역할을 포함시켰다. “기존의 역사책에는 사회주의 세력의 활동이 아예 빠져 있고 그만큼 김구 선생의 업적이 과장돼 있다”는 것이 이씨의 관점이다.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양 갈래로 나뉘어 극단적 대치를 하는 바람에 독립운동의 역량이 약화된 점을 지적한 것은 ‘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22권은 민중사 중심의 역사학자인 이씨의 장기가 살아있는 생활사. 일제의 식민통치가 문화정치로 바뀌면서 시대조류로 유행했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생활상 등 의식주 생활의 변화상을 생생히 묘사했다. 특히 이 부분은 식민지 시기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소설가 박완서씨(72)가 검토해 주었다. 이씨와 박씨는 경기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마을에 함께 사는 이웃사촌 사이.

이씨가 보여준 초고에는 박씨가 진분홍 메모지에 꼼꼼히 적어 놓은 지적사항들이 눈에 띄었다.

‘1941년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경성에서 영업을 개시하였다’는 대목에는 ‘다시 알아보시길. 제가 서울 온 게 1938년인데 그때 현저동에 시설이 좋은 공중목욕탕 하나가 있었으니까요’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이씨는 그간 200자 원고지 2만9000장 분량의 원고를 쓰느라 팔이 마비되고 당뇨까지 앓았지만 탈고 후에는 “아픈 데도 없이 날아갈 것만 같다”며 술을 자주 마신다. 정작 입안이 다 헐 정도로 시름시름 앓는 사람은 10년간 노작(勞作)에 매달리는 남편의 온갖 역정을 다 받아준 아내 김영희씨(54)다.

이씨는 광복 이후 현대사 서술계획을 묻자 “지금까지는 한문 실력으로 버티었지만 현대사는 영어를 잘 해야 하고 자료도 방대해서…”라며 답을 미뤘다. 한편 이씨가 앞서 탈고한 정조대왕 사망(1800년) 이후 1910년까지 ‘개항기’를 다룬 16∼19권은 이달 말 출간된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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