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교무실에 들러 도서실 열쇠를 가지고 2층 계단을 오르면 벌써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한창 점심급식 중이다. 창문으로 아이와 눈 한 번 마주치고 서둘러 도서실 문을 연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전날의 일지를 뒤적이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몰려온다. 빌려간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대출받으려는 아이들이 길게 늘어서고 내 손길도 분주해진다. 도서실 이용이 아직도 서툰 1학년 꼬마들부터 이제는 제법 숙녀티가 나는 6학년 언니들까지 점심을 먹자 마자 도서실로 온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올봄,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는 너무 오래된 책들과 잘 읽히지 않는 책들을 모두 폐기하고, 남아있는 책들과 새로 구입한 책들을 모두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데 책 하나하나마다 바코드를 새로 붙이고 분류기호를 적어넣고, 번호대로 꽂아 정리하는 대작업(?)이었다. 사서 엄마들이 아침부터 오후 서너시까지 열흘 넘게 매달렸다. 정말 엄두가 안 나는 작업이었는데 깨끗이 정리된 도서실을 보는 엄마들에겐 감동의 순간이었다. 내 아이만이 아닌 우리 아이들이 이용할 도서실이기에 보람이 더욱 컸던 것 같다.
요즘은 그 인기가 조금 시들해졌지만 한동안 도서실문이 닳도록 아이들이 들락거린 이유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덕분이었다. 할인점의 책 코너에도 만화를 보는 아이들로 붐비는데 학교 도서실도 예외가 아니다. 좋은 그림책과 동화책에 먼저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서운하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책과 친하게 하려고 많이 노력할 때 좋은 그림책들을 적절히 활용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은 도서실에서 한 번 빌려본 것이라도, 내용을 다 아는 것이라도 꼭 사주곤 했는데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책을 두고두고 몇 번이고 읽었다. 1학년 꼬마들에게 그림책을 골라주면서 그때를 자주 떠올린다. 책 읽는 재미를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저학년들이 돌아가고 오후수업이 시작되면 조금 한가해진다. 그러면 반납 받은 책들을 서가에 꽂고 커피 한 잔 마시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도서실 창으로 보이는 중학교 운동장에 가을이 한창이다. 오후수업을 마친 고학년들이 도서실을 다녀가면 어느새 오후시간이 훌쩍 간다.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고 물걸레질을 하고 나면 오후 4시. 도서실 문을 닫을 시간이다.
작은 시골마을의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이 권해준 책 한 권 때문에 유명한 천문학자가 되었다는 미국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서 교사가 학교마다 1명씩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서 엄마들의 애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전문 사서 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책 읽는 아이들로 가득 찬 도서실을 그려보면서 사서 엄마의 하루를 접는다.
정혜경 서울 강동구 고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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