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거푸 수상 소설가 송기원씨 "콤플렉스는 나의 힘"

  • 입력 2003년 11월 7일 18시 43분


사진제공 이영균씨
사진제공 이영균씨
《이번주 잇달아 발표된 ‘대산문학상’(상금 3000만원)과 ‘김동리문학상’(상금 1500만원)의 수상자는 소설가 송기원씨(56·중앙대 문예창작과 대우교수)였다. 4월 출간한 창작집 ‘사람의 향기’(창작과비평사)로 2개의 굵직한 문학상을 연거푸 받은 것이다. 7일 충남 천안시 성거읍 13평짜리 임대아파트, 작가의 집필실을 찾았다. 푸른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는 한껏 여유로워 보였다.》

“부끄럽고 쑥스럽죠….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동시 당선됐던 것처럼, 운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나 봐요. 은사이신 김동리 선생을 기리는 상을 받게 돼 더 뜻 깊습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재학시절 은사였던 김동리는 “얄팍한 글재주 하나만 앞세운 채 천방지축 날뛰다 처자식 굶겨 죽일 놈”이라고 수업시간 내내 송기원만 꾸짖다가 나간 적도 있었고, 심지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송기원이라는 사람이 차 마시거나 밥 먹자고 접근하면 절대 응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스승은 비범한 재능을 가진 제자의 방종을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사춘기 때부터 ‘(사생아로 태어난) 내 피는 더럽다’는 삶의 무게가 내게 오래도록 흠집을 냈지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면서는 퇴폐, 탐미주의와 황폐한 연애로 그 흠을 덮어씌우려 했고요. 이제는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지요.”

그는 김동리문학상 수상소감 대신 스승에게 편지를 썼다.

‘오랫동안 막돼먹은 제자가 오늘은 다름 아닌 바로 스승님이 주시는 상을 받고 있습니다. … 지금 이렇듯 저에게 상을 주시는 것은 30년에 이어진 또 다른 꾸지람이신지요?’

수상작 ‘사람의 향기’는 작가 자신의 우울한 가족사와 고향인 전남 보성 사람들의 신산한 삶에 바쳐진 연작이다. 작가는 “가까스로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진 내가 사물들을 본래의 빛깔로 보려는 몹시 조심스러운 시도였다”고 고백한다.

“문학이란 사람들이 버리고 간 똥이나 쓰레기에서 값어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매주 한번 모교에서 강의할 때도 학생들에게 ‘자신 안에 있는 콤플렉스가 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쓰레기더미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의 것에서도 귀한 것을 찾을 수 있거든요. ‘사람의 향기’는 ‘나’라는 미신에서 빠져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한 결과물인 셈이죠.”

90년 국선도에 입문한 뒤 충남 계룡산 깊은 곳에서 용맹정진하다 보니 이상한 소문이 나서 느닷없이 병 고쳐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하면, 도력(道力)을 겨뤄보자고 도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하산해 전북 고창군 선운사 부근 장호리에서 바다를 보고 살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낮에 일하러 나가는데 혼자 빈둥대기 미안해서” 그곳을 떠나 천안에 머문 지 올해로 4년째. 아파트 앞 개울가에 버려져 있던 하천 부지를 개간해 밭을 일구고 근처 진천군이나 병천면에서 열리는 장을 둘러보기도 하는 생활을 작가는 꽤 만족스러워한다.

이제 그는 소설을 통해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민중도 못되는 천민, 윤리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의 삶을 소중히 그리는 자세는 그래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최근 소리꾼이 노래하는 자신의 목청에서 한(恨)과 사람 냄새를 떨쳐버리지 못한 이야기 ‘노랑목’의 초고를 마쳤다.

천안=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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