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지 않은 바람둥이
“요즘 남자들은 바람을 피워도 알거지가 될 정도로는 하지 않지요. 그런걸 보면 이춘풍에게는 오늘날에는 없는 순수함이 있어요.”(윤문식)
기생 추월에게 빠져 가산을 탕진한 이춘풍이 아내 김씨의 도움으로 재기한다는 내용. 김지일 극본, 연출 손진책. 14~12월 14일 국립극장 내 마당놀이 전용 특설무대. 2만5000원~3만5000원. 02-747-5161 |
“음녀니 탕녀니 하는데, 실은 당시 사회가 어을우동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남자에게 선택당하는 시대에 남자를 선택했을 뿐이죠.”(이재은)
두 주인공은 모두 자기 역할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물론 이춘풍은 기생 치마폭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고 어을우동은 남자를 밥 먹듯이 바꾼 ‘문제적 인간’이지만, 적어도 현대사회에서 보면 나름대로 할 말은 있는 인물들이란 것. 윤문식은 “매사에 계산적인 현대인보다는 차라리 어수룩해도 순수한 이춘풍이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고, 이재은은 “어을우동을 당시의 ‘신여성’으로 평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테랑 VS 초보
“80년부터 마당놀이를 시작했으니 24년째지요. 그래도 관객과의 호흡이 필요한 마당놀이가 보통 연극보다 열 배는 더 힘들어요.”(윤)
“사방이 객석이잖아요. 처음 연습할 땐 앞뒤를 가늠할 수가 없더라고요. 첫 회를 해 봐야 마당놀이의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이)
‘마당놀이’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윤문식이다. 사실 갖은 재담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데 그만한 기량을 가진 이도 없다. 그는 “마당놀이가 꾸준히 인기를 끌어온 데는 김종엽, 김성녀, 그리고 윤문식의 ‘3인방’이 제대로 만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웃음으로 풀어가는 조선 시대 성 스캔들. '다모'의 정형수 작가가 극본을 썼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재은, 이재포 등 출연. 장수철 연출. 23일~12월 15일 장충체육관. 2만~3만원. 02-368-1515 |
이재은은 마당놀이가 처음이다. 영화 ‘노랑머리’의 도발적인 10대, 드라마 ‘인어아가씨’의 철없는 막내딸 이미지가 겹치는 그에게서 마당놀이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소리를 시작하고 서울국악예고에서 민요를 전공하는 등 실제로는 전통예술과 무척 가까운 배우다. 연습장에서 만난 이재은의 한복 입은 자태(姿態)도 매우 고왔다. 그는 “단지 무대가 마당일 뿐, 기존 마당놀이와는 다른 신선함을 보여주자는 것이 ‘어을우동 팀’의 각오”라고 말했다.
○마당놀이는 현실의 반영
“이춘풍이 탕진한 ‘호조 돈 5만냥’이 요새로 말하면 공적 자금이에요. 마당놀이라는 게 원래 서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는 겁니다.”(윤)
“요즘의 ‘성(性) 남용’ 세태를 어을우동의 일생을 빗대 풍자하는 거지요.”(이)
이들은 한결같이 ‘마당놀이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강조했다. 윤문식은 “힘들고 어려운 때 국민들에게 힘을 주려면 ‘이춘풍전’만큼 해학적인 작품이 없다”며 “‘이춘풍전’은 92년 한 차례 마당놀이로 등장한 적이 있는데 역대 마당놀이 중 관객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회고했다.
이재은은 “어을우동의 행실이 옳다, 그르다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라 남성위주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사회를 풍자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기 다른 측면에서 현실 풍자를 담아낸 두 작품 중 ‘이춘풍전’은 해피 엔드, ‘어을우동’은 주인공이 죽음을 맞는 비극으로 끝난다. 뚜껑을 열었을 때 과연 어느 작품에 관객들이 더 몰릴 것인지 관심거리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