枕-베개 침 憂-근심 우
客-손님 객 徒-텅 빌 도
債-빚 채 廟-사당 묘
馮驩(풍환)은 춘추시대 齊(제)나라 孟嘗君(맹상군)의 食客(식객)이었다. 孟嘗君이 食客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먼 길을 찾아왔던 자다. 孟嘗君은 그의 몰골이 하도 안쓰러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괴짜였다. 3등 숙소를 받자 고기반찬이 없다고 투덜대더니 2등 숙소로 옮겨 주자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이었다.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孟嘗君은 3000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薛(설·현재 山東省 동남지방)에서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빚 독촉을 위해 1년간 無爲徒食(무위도식)으로 일관하고 있던 馮驩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를 잡고 잔치를 벌여 債務者(채무자)들을 배불리 먹인 다음 계약서를 몽땅 태우고 돌아왔다.
孟嘗君은 기가 막혔지만 薛의 주민들은 孟嘗君의 인품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후에 孟嘗君은 相國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薛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가 薛에 이르자 주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이 때 馮驩이 말했다.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그래야만 죽음으로부터 모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卿(경)은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高枕無憂(베개를 높이 베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잠을 잠)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卿을 위해 나머지 두개의 굴도 뚫어드리지요.”
후에 그는 梁惠王(양혜왕)에게 孟嘗君을 중용토록 설득하고는 孟嘗君에게는 불러도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은 齊王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놀란 齊王은 그 제서야 孟嘗君의 진가를 알아차리고는 그의 相國 직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두 번째의 굴이 완성된 셈이다.
후에 馮驩은 다시 孟嘗君을 시켜 薛에 宗廟(종묘)를 짓고 齊王에게 先王(선왕)대부터 전승돼 오던 祭器(제기)를 요청하여 宗廟에 갖다 두도록 했다. 그것은 薛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宗廟가 완성되자 馮驩이 말했다.
“이제 세 개의 굴이 모두 완성된 셈입니다. 卿께서는 이제야 비로소 베개를 높이 베고 즐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高枕爲樂).”
孟嘗君처럼 하루아침에 실각하는 수가 많다. 누구나 베개 높이 베고 편안하면서도 걱정 없는 삶을 누리고자 하지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걱정 없는 환경에서나 가능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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