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9분밖에 안 된 아기에게 무늬 없는 도형과 사람 얼굴 무늬의 도형을 보여주었다. 엄마 뱃속의 어둠 속에서 사람 얼굴이라고는 본 적이 없었을 신생아들은 신기하게도 얼굴 모양 도형에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얼굴 인식 분야의 권위자인 심리학자 비키 브루스는 “인간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세상에 나온다”라고 단언한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실연을 하고 난 뒤 “당신의 얼굴이 점점 커져서 온 우주를 채운다”고 탄식했다. 허풍 섞인 은유일까? 그렇지 않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얼굴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소립자의 수보다 많다.
지구상에 60억명 이상의 사람이 살고 있지만 한 존재의 인식표인 ‘얼굴’은 전 우주에서 오직 하나뿐인 것이다. 로마의 현자 키케로는 일찍이 이 짧은 한마디로 통찰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은 얼굴에 있다.”
얼굴 없이도 잘 살아가는 생물이 많은데 사람의 얼굴은 무슨 필요에 의해 생긴 걸까, 얼굴 중에서 특별히 거짓말에 능한 부분은 어디일까, 정말로 사람들은 미모에 따라 사람차별을 할까….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체생리학 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지난 20년간 획기적으로 발전해온 이런 얼굴 연구의 과학적 성과를 그리스 시인 사포의 시구(詩句)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의 대사,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 ‘미모가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법에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하버드 법률평론(Harvard Law Review)’의 논문, 가수 로버타 플랙의 팝송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들과 버무려 경쾌한 대중과학서로 빚어냈다.
저자에 따르면 얼굴 구조의 핵심은 ‘입’이다. 먹는 일을 담당하는 입이야말로 ‘동물이 세계를 흡수해 비자기(非自己)적인 것을 자기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 근육은 오른쪽 왼쪽 각각 22개인데 이는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많은 숫자.
이 중 기만과 속임수에 능한 것은 아래쪽 근육인 입 주위다. 먹고 말할 때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통제가 쉽다는 것. 반면 거짓말에 약한 것은 눈이다. 16세기 시인 토머스 와이엇이 “눈은 마음의 배신자”라고 한탄한 것처럼 미소로 슬픔을 숨길 수 있는 사람도 눈을 통해서는 속울음을 드러내고 만다. 이보다 더 정직한 근육은 이마. 주로 슬픔, 죄의식, 두려움, 걱정 등을 드러내는 이 부위의 근육으로 거짓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실험적으로 10∼15%도 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인의 2% 정도가 ‘추모(醜貌) 공포증’이라 불리는 ‘신체이형 장애(BDD·Body Dysmorphic Disorder)’를 앓고 있다. 자기 얼굴에 있는 ‘조그만 까만 점’ ‘부스스한 머리카락’ ‘빌어먹을 흰 잡티’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이들은 운전하다가 백미러에 얼굴을 비춰보느라 사고를 내고, 횡단보도 중간에서 빨간불이 켜져도 ‘멈추어 서면 너무 못생긴 나를 모든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그냥 걸어가다가 비명횡사한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전 사회구성원이 앓고 있는 이 증세 때문에 성형외과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름다운 얼굴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는 미의 상대적 기준을 인정하라는 인류학적 입장보다는 ‘아름다움은 생물학적 이슈이며 누구의 DNA가 가장 많이 선택되어 후대에 전달될 것인가에 관한 문제’라는 진화심리학 쪽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 윤리적 비판이나 문화적 해석이 무엇이든 “인종과 민족을 초월해 사람들은 동일한 미감(美感)을 갖고 있다”고 완강히 주장한다.
못생긴 ‘개구리’들은 그러면 어째야 한단 말인가. 저자는 과학적으로도 여전히 저주의 마법을 풀 수 있는 것은 어쨌거나 여전히 ‘사랑, 그리고 사랑받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화상(火傷)으로 일그러진 로체스터 백작이 자신을 잘생긴 남자로 만들어줄 약이 없겠느냐고 제인 에어에게 물었을 때의 바로 그 대답처럼….
“마법의 힘은 필요 없어요, 주인님. 제게 묻는다면 매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랑을 하는 눈뿐이라고 말하겠어요.” 원제 ‘The Face’(1998).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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