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의 한 극장에서 영화 ‘오구’(28일 개봉) 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 30년 가깝게 연극계를 주름잡다 같은 이름의 연극을 영화로 만들어 53세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윤택씨가 격정을 토했다. 연극 ‘오구’는 1989년 처음 무대에 올려진 뒤 270만명의 관객몰이를 기록한 화제작.
그는 “영화 한 편 만들기가 이렇게 힘들어서 되겠느냐”며 “내 영화가 망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저항할 것이다”고 밝혔다. 왜 그는 이처럼 한국 영화계에 ‘선전포고’를 했을까.
직접적인 이유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처럼 힘겨운 영화제작비 조달 과정. 그는 연극계의 스타 연출가이기도 하지만 ‘장군의 아들2’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대종상 각본상을 두 차례나 받는 등 영화계와도 인연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제작비 때문에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 보냈다고 했다. 기존 영화권에서 제작비를 조달하지 못하자 부산 지역의 기업 등을 중심으로 어렵게 순수제작비 18억원을 마련했다. 그런 만큼 개봉을 앞둔 그의 각오는 결연했다.
“제작사인 ‘마오필름’이 빚을 내고 극단이 보유한 적립금을 담보로 1억5000만원을 대출받고 해서 간신히 돈을 준비했다. 이 작품이 망하면 영화는 물론 글쓰기도, 연극도 안할 것이다.”
활동 중단의 진의를 14일 다시 물어본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한 말이 아니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겠다. 작업을 안 하는 것도 저항의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다양성도 없고 ‘천민 자본주의적’ 풍토가 판치는 영화판을 바꾸기 위해 독립영화운동을 펼치겠다.”
“내 영화가 망하면”이란 발언은 지나치게 감정적,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닐까. 그는 이에 대해 “이윤택이란 사람이 영화 한편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우면 다른 사람은 어떻겠나. 내 분노와 저항은 후진들을 위한 작업이자 공적인 분노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조건부 활동 중단 선언은 이른바 시장점유율 40%를 넘어선 한국 영화의 씁쓸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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