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서현/세종로를 문화의 중심으로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8시 24분


‘왕이 없어졌으니 궁궐도 필요 없다.’

일제의 논리는 명쾌했다. 근대적인 제도와 함께 들여온다는 근대적인 건물들을 궁궐에 밀어 넣었다. 경복궁은 박람회장으로, 경희궁은 학교로,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영조의 잠저(潛邸) 창의궁(彰義宮)은 동양척식회사의 사택단지가 되었다. 정조가 아버지를 기리던 경모궁(景慕宮)에는 총독부 의원이 들어섰다. 행정관아들도 헐렸다. 의정부는 경기도청으로, 의금부는 지방법원으로 바뀌었다. 이국의 지배자에게 이 땅의 역사는 보이지 않았고 그만큼의 빈 터만 보였을 것이다.

▼행정수도 옮겨도 ‘역사’ 보존해야 ▼

그들이 남겨준 가치관은 광복 후에도 남았다. 학교가 떠난 경희궁은 건설회사에 팔아넘겼다. 경희궁을 되찾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무심한 사무실들로 스산한 경희궁터를 걷고 있을 것이다.

경복궁 앞에는 수십 층 높이의 건물들이 들어섰다. 정부가 그 무례함에 앞장섰다. 궁궐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제군주의 시대를 동경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나라를 움직이던 중심 공간, 거기 쌓인 역사가 우리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총독부 청사를 헐어버린 이유는 그 건물이 흉측해서가 아니다. 건물이 딛고 서 있던 땅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경복궁 앞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수도를 옮기겠다고 한다.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 마련되고 있다.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는 정부청사의 매각대금을 재원으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논리는 명쾌하다. 행정부가 없어지니 정부청사도 필요 없다. 새로운 법안은 경복궁 앞 세종로의 정부청사들을 부동산시장에 내다 팔 근거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돈에는 눈이 없다. 역사도 없다. 이 공간을 사들인 거대자본은 투자한 만큼 회수하겠다고 할 것이다. 재산권 행사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할 것이다.

경복궁을 안뜰처럼 거느렸다는 주상복합아파트 분양광고가 신문지상에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등판 가득 문신 같은 간판을 두른 건물이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제국주의의 무력에 경복궁이 유린된 지 꼭 일백년, 이제는 거대한 자본력에 우리 도시의 안방을 내줄 길을 만들고 있다.

세종로의 정부청사들을 팔아버리면 안 되는 이유는 건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 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행정관청 육조가 있던 터다. 지금 절대권력의 제왕은 사라지고 육조도 사라졌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육조가 들어서 있던 땅은 정부의 것이 아니고 국민의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물려받은 이 땅을 팔 권리가 없다. 이 땅을 가꿔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세종로는 과천과 다르다. 테헤란로와도 다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가치가 매겨질 공간이 아니다. 세종로를 건물과 토지의 조합으로만 보는 역사의식으로는 새로운 수도를 만들 수 없다. 600년의 과거를 지운 채 100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믿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공공영역 1번지. 이곳은 국민 모두가 영원히 소유하고 있어야 할 우리의 공간이다. 대한민국이 자본공화국이 아니고 민주공화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버팀목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정부청사 민간매각 말아야 ▼

광화문(光化門)은 서양의 문과 다르다. 빛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 아름다운 이름은 세종대왕의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피 묻은 칼로 세상을 바꿨노라고 개선하는 장군을 위해 만든 그런 문이 아니다.

위대했던 문화군주의 뜻대로 이 공간은 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미술이 싫어서가 아니고 미술관이 멀어서 못가겠다는 불평을 잠재울 기회가 이제 왔다. 자동차의 소음이 아니고 어린 아이들의 웃음으로 이 공간을 채워야 한다. 그 아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자본이 아닌 문화의 빛으로 세상을 바꾼 시대, 우리는 역사에 그렇게 기록될 수 있을 것인가.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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