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시대 토성 발견… 1600년前 축조 추정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8시 30분


김해시와 경남고고학연구소가 발굴한 금관가야 토성의 내벽 석축 -사진제공 김해시
김해시와 경남고고학연구소가 발굴한 금관가야 토성의 내벽 석축 -사진제공 김해시
1600여년 전 금관가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토성(土城)이 처음으로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남 김해시와 사단법인 경남고고학연구소(소장 최종규·崔鍾奎)는 “5개월간의 발굴 작업 끝에 김해시 봉황동 유적지 인근에서 4, 5세기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의 주거지역 방어를 위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을 발굴했다”고 14일 밝혔다.

가야시대 토성의 발굴은 이번이 처음이다. 봉황동 토성은 상단 너비 16.5m, 하단 너비 22m이며 남아 있는 성의 높이는 2.8m가량이다.

현재 토성 주변은 주택 등으로 개발돼 성곽이 대부분 훼손되고 없으나, 성곽 너비와 주변 지형 등을 감안할 때 전체 성곽길이는 1km 이상이었을 것으로 발굴팀은 분석했다.

이 토성은 직경 20∼30cm짜리 통나무를 1m 간격으로 박아 점토와 모래 성분의 흙을 샌드위치 식으로 번갈아 다져넣는 ‘판축(板築) 기법’을 적용했다. 또 성벽 내외곽에 돌을 쌓은 뒤 진흙을 발라 튼튼하게 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해시 송원영(宋源英) 학예사는 “이 토성은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주거지가 발굴된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과 가깝고 ‘가야왕궁이 있었다’고 적힌 조선시대 비석이 세워진 곳 인근인 점 등으로 미뤄 금관가야의 궁궐이나 전각(殿閣) 등의 외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익대 역사교육과 김태식(金泰植·가야사) 교수는 “많은 사람의 동원이 필요한 대규모 토성을 축조했다면 금관가야가 단순한 소국이 아니라 백제나 신라와 같이 고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갖췄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해=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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