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여성가장 모임 '참솔어머니회' 강민숙 회장

  • 입력 2003년 11월 16일 18시 07분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지 10년, 강민숙 시인은 이제 생태문예지 ‘동강문학’을 통해 개인적인 슬픔을 사회와 생명에 대한 시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원대연 기자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지 10년, 강민숙 시인은 이제 생태문예지 ‘동강문학’을 통해 개인적인 슬픔을 사회와 생명에 대한 시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원대연 기자
‘오늘은/동사무소에서 지환이 출생신고를 하면서/당신 사망신고를 같이 냈습니다/대기실 의자에 앉아/죄인처럼 고개를 떨구는데/당신 이름을 지운/빨간 가위표가/내 심장에 꽂혀듭니다.’(‘동사무소에서’)

강민숙(姜敏叔·41)씨는 ‘슬픈 시인’이다. 둘째아이의 출산을 며칠 앞두고 산후조리 약을 사러 나섰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한 애절한 이야기를 담은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1994년)가 그랬고, 그 이후의 삶도 그랬다.

“한 권의 시집 때문에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요.” 베스트셀러 작가로 각종 언론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탄 게 화근이었다. 94년 둘째아이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첫 인세 200만원을 고스란히 뜯겼다. 96년에는 남편의 고향 선배를 자처하며 찾아온 전과 25범 사기꾼이 복지법인을 만들자며 전 재산 8500만원을 가로챘다. 강씨가 만든 여성가장 모임 ‘참솔어머니회’ 회원 몇몇도 같은 사람에게 당했다.

2001년엔 보험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들이 강씨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편집해 “보험에 들지 않으면 이렇게 될 수 있다”며 각종 판촉활동에 이용했다는 것. “멀쩡한 아이를 자폐아로, 남편의 사고를 대책 없는 죽음으로 묘사했더군요. 마음고생으로 수면제 없이는 잠 못 드는 세월이 2년째입니다.” 9월 1심서 일부 승소했지만, 강씨는 항소했다.

세상은 강씨를 무던히도 속였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2001년부터 1년에 2차례 발행하는 국내 유일의 생태문예지 ‘동강문학’이 그의 희망의 결정체다. 녹색연합 회원으로 환경에 막연한 관심만 갖고 있다가 강원 영월군의 소개로 책을 내며 방랑시인 김삿갓의 호를 딴 ‘난고(蘭皐) 문학상’도 제정했다.

“동강문학과 재혼했다고 할 정도로 이 책이 저에겐 살아 있는 이유이자 의미입니다.” 생태문학으로의 관심은 그로 하여금 편협했던 시원(詩原)인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기도 됐다. 그 때문에 매번 발행비 1000만원을 사비로 충당하면서도 이어가고 있다.

곧 출간할 세 번째 시집 ‘어느 섬에서의 하루’에서 강씨는 개인의 아픔에서 이웃의 아픔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난히 장애인 가정이 많은 강씨의 동네(서울 강서구 등촌동)와 자신이 운영하는 글짓기학원 어린이 등을 소재로 삼았다.

‘알전구로 매달려/빛나는 사람아/속 다 드러내 놓고/어둠을 지켜낸/따뜻한 사람아/한번도 하늘/올려다본 적 없는/눈부신/사람아.’(‘사람은 따뜻하다’)

“밝은 모습으로 찍어 주세요.” 사진기자에게 부탁하는 강씨의 모습에서 맑은 모습이 묻어난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특히 남편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삶은 슬프기보다 따뜻하지요.”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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