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7년 오귀스트 로댕 사망

  • 입력 2003년 11월 1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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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양 조각의 문을 연 오귀스트 르네 로댕.

근대 조각은 그를 만나 비로소 전통적 형식주의의 옷을 벗었고 20세기의 새로운 조형언어를 부여받았다. 그는 미켈란젤로 이후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현대 미술사에서 오직 피카소만이 그의 명성과 거장의 면모에 필적할 뿐이다.

화가 고갱은 타히티 섬에서 그림을 그리다 죽어가며 “신(神)이여! 왜 나는 당신처럼 될 수 없는가”라고 절규했지만 로댕은 스스로를 ‘신의 손’이라고 칭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신을 자처한 천재적 예술가의 오만(傲慢)과 에고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리 로즈 뵈레와 카미유 클로델.

50여년간 내연의 처였으며 한시도 로댕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외도까지를 인내했던 뵈레. 그녀는 로댕의 무명시절 작업실로 개조한 마구간에서 함께 지내며 삯바느질로 그를 봉양했다. 로댕은 그녀에 대해 “나를 향해 동물적인 충성심을 지닌 여자”라고 말하곤 했다.

44세의 로댕이 만난 클로델은 갓 스물을 넘기고 있었다. 로댕은 깊고 푸른 눈의 그녀에게 한순간에 빠져든다. 그들은 사제지간에서 조각가와 모델로, 그리고 연인 사이로 발전했으나 그들이 함께 한 10년은 벼린 칼날처럼 애증(愛憎)으로 점철된다.

그녀의 자전적 작품 ‘성숙한 시대’는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비극적인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나체로 무릎을 꿇은 채 로댕에게 애원하고 있고 그는 뵈레의 팔에 안겨 끌려가고 있다. 클로델은 로댕에게 결혼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끝내 거절당하였다.

이후 그녀는 로댕이 영광의 정점을 향해 비상하는 동안 고독 속으로 침잠한다. 결국 정신착란으로 병원에서 생을 마치게 되는 클로델.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로댕을 저주했다.

“나는 그에게 영감을 제공해야 했다.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나는 양육(養育)되었다. 그것은 한 여성에 대한 철저한 착취였다. 나는 예술가로서 재능을 도둑맞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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