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오구'…스크린으로 굿판이 이어졌네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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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가 이윤택의 영화 감독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 ‘오구’.-사진제공 시네와이즈필름
연극 연출가 이윤택의 영화 감독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 ‘오구’.-사진제공 시네와이즈필름
영화 ‘오구’는 ‘충무로의 돌연변이’에 가깝다.

이 작품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윤택(51)이 누군가. 그는 ‘문화 게릴라’라는 명성을 얻으며 연극계를 주름잡았고,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로 두 차례나 대종상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89년 초연 이후 연극계의 박수를 받으며 270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 ‘오구’가 영화판에서도 축복 속에 태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영화적 소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돈도 사람도 이 작품을 외면한 것. “이 작품이 망한다면 난 독립영화운동을 펼치겠다”는 그의 주장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영화 ‘오구’는 충무로의 영화인 뿐 아니라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으로 봐도 분명 돌연변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오구의 매력이자 상업적 약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죽음과 윤회, 산 자의 갈등과 화해,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 등 하나만으로도 다루기 버거운 주제들을 무리 없이 한꺼번에 다뤄낸다. 아마도 이는 상당 부분 이윤택의 힘 있는 연출과 이 작품의 원형인 연극의 생명력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연극적 과장은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알몸에 커다란 성기를 달고 나타난 세 저승사자, 마을 정자에 모인 노인들의 농담과 누드 연출, 신명난 굿판이 그렇다.

저승사자들이 78세의 황씨 할매(강부자)가 사는 마을에 나타난다. 이들 중 남편의 모습을 한 저승사자를 만난 황씨 할매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굿을 하기로 결심한다. 황씨의 오랜 친구이자 박수무당 석출(전성환)은 한판의 굿을 위해 무당의 자식으로 살며 서러움을 겪었던 자식들을 하나둘 불러들인다. 석출의 딸 미연(이재은)은 황씨의 둘째 아들인 용택(김경익)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용택은 미연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강간당하는 것을 막지 못하자 자책감으로 자살한다.

영화는 이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굿판이라는 농축된 라이브 무대를 통해 너끈하게 담아냈다. 그 비법은 웃음과 해학이다. 황씨의 죽음에 이어 등장하는 며느리(정동숙)의 코믹한 출산 장면은 고통을 이겨내는 우리 삶의 근원적 힘이 웃음에 있음을 보여준다. 강부자 전성환 정동숙 등 TV와 연극 무대에서 활동해온 중견 연기자들의 넉넉한 연기가 편안하다.

굿판에서 실타래처럼 얽혔던 모든 갈등을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연극적 설정이 영화적 재미에만 익숙한 관객의 눈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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