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 건강학]두려움이라는 이름의 백발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7시 31분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와 함께 초나라와 월나라를 멸망시킨 오자서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 왕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되자 20대 청년인 오자서는 복수할 결심으로 초와 오의 국경지대인 함곡관에 이른다. 그러나 워낙 경비가 삼엄해 관문을 넘지 못하고 한 촌부의 집에 숨어들어 하룻밤을 보냈다.

그는 혹여 촌부가 밀고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시달리며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운 다음 날 소스라치게 놀라 통곡했다. 하룻밤 새 그의 검은 머리가 백발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생활이 단순했던 옛날에는 ‘젊은 백발’이 극히 드물었을 테니 청년 오자서는 심한 좌절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복잡한 사회에서는 백발은 늙고 젊음에 관계없이 찾아오는 듯하다.

필자는 가끔 머리가 흰 사람들에게 “당신은 두려움이 많다”고 말하는데, 대개는 “죄지은 일도 없는데 뭘 두려워하겠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직장, 가정, 인간관계, 시험 등 생활 전반에서 크고 작은 두려움을 항상 안고 살게 마련이다.

오자서처럼 하룻밤 새 백발이 될 만큼 극단적인 두려움은 없더라도 조금씩 두려움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젊은 나이에도 흰 머리가 하나둘씩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과 흰 머리카락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먼저 두려움이란 욕망을 성취하려는 욕구나 실패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한 심리작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심리는 오장육부중 수(水)에 속하는 신장과 방광의 속성인데, 수의 참 성품인 고요함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지혜가 그릇되게 작용한 결과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신장과 방광이 크고 실한 반면 수극화(水剋火·물이 불을 끔) 원리에 의해 화에 속하는 심장이 작고 허약하다. 그래서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무서움을 잘 타 가슴부터 쿵쾅거린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만큼 심장이 약해지고 덩달아 신장도 병들게 된다.

신장이 크고 실한 사람은 머리카락이 희어지는 것쯤이야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신장과 방광의 염증, 당뇨, 협심증, 고혈압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신장과 방광이 작고 허약한 체질이라 하더라도 외부 충격에 의한 두려움에 시달리면 즉시 신장과 방광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세포들이 기가 죽어 제 활동을 하지 못하며 그로 인해 염증, 당뇨, 치매, 불임 등의 깊은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을 위해서라도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그런데 사람 심리는 두려움을 떨치려 하면 오히려 더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우선 ‘나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하면 신장의 참 성품인 고요하고 맑은 지혜가 떠오를 것이며 두려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평소에도 고요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다 보면 신장은 그 마음에 반응해서 두려움의 에너지를 없애고 맑은 지혜를 샘솟게 해 건강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신장과 방광의 생명 세포들의 기운을 돋우어주는 약을 먹는 것도 좋다. 약이라야 밥상에 오르는 흔한 식품이면 족하다.

신장, 방광이 크고 실해서 몸이 냉하면 인삼, 더덕, 도라지, 옥수수, 옥수수 수염, 생강, 쑥 등을 달여서 차로 마시거나 즙을 내서 상식하는 것도 좋고 신장, 방광이 작고 허약하면 검은콩, 검은깨, 미역, 다시마, 흑염소, 오골계, 자라, 가물치, 땅붕어 등을 여러 방법으로 요리해서 자주 먹으면 좋다.

그러나 제 아무리 천하에 둘도 없는 명약이 있어도 두려움을 자주 일으키고 살아가면 신장과 방광은 병들기 마련이고 치료도 어렵다. 약으로 한 때 나은 듯해도 두려움이 있는 한 재발한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맑고 고요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자.

정경대 국제의명연구원 원장 세명대 한의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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