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처음엔 한옥서 생선 썩는 냄새로 시작했다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7시 31분


현대미술의 ‘요람’개관 5주년전이 열리는 아트선재선터 2층 전시장. 이 곳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던 이불의 사이보그 시리즈인 ‘Cybog W1∼W4’가 공중에 설치됐다. 사방벽을 휘감아 돌며 있는 네온사인 문자는 리옹비엔날레(1997년)와 베니스비엔날레(1999년)에서 소개됐던 실비 플러리의 작품. 한국작가 정서영의 설치작품인 ‘전망대’(왼쪽)도 보인다. 사진제공 아트선재센터
현대미술의 ‘요람’
개관 5주년전이 열리는 아트선재선터 2층 전시장. 이 곳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던 이불의 사이보그 시리즈인 ‘Cybog W1∼W4’가 공중에 설치됐다. 사방벽을 휘감아 돌며 있는 네온사인 문자는 리옹비엔날레(1997년)와 베니스비엔날레(1999년)에서 소개됐던 실비 플러리의 작품. 한국작가 정서영의 설치작품인 ‘전망대’(왼쪽)도 보인다. 사진제공 아트선재센터
1995년 5월 서울 종로구 소격동 정독도서관 앞에 자리한 조그만 한옥에서 파격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장인 한옥에선 생선 썩는 냄새가 퍼지고, 돼지머리까지 등장했다. 전시의 제목은 한국 현대미술의 ‘싹’을 보여 주겠다는 뜻의 ‘싹’ 전. 당시 문화계는 냉소와 무관심으로 일관했지만, 돌이켜 보면 이 행사는 한 전위 문화공간의 ‘탄생’을 예고하는 전시였다.

○대안공간에서 주류공간으로

그로부터 3년 뒤인 98년 한옥 옆에 건물이 들어서고 아트선재센터가 문을 열었다. 아트선재센터는 그 뒤 여러 면에서 한국 문화계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전시장 외에도 소극장 겸 공연장, 시청각실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미술관=전시’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렸기 때문이다.

김홍선 작 ‘Eyes Wide Shut-프로젝트 뮤지움 뮤지움’

개관이후 전통적 미술장르의 틀을 넘어 영화 음악 만화 등 혼성 문화적 흐름에도 관심을 쏟았고, 현대성과 실험정신을 화두로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 지원해왔다. 독립영화제인 ‘퀴어영화제’를 수용했으며, 주차장과 화장실까지 전시장화하는 파격도 선 보였다. 비주류의 언더그라운드 문화흐름을 과감하게 소개하고, 어린이를 위한 참신한 미술교육 프로그램들도 마련했다. 김선정 부관장은 “지금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너무 파격적인 행사들이 많았다. 안팎으로 반응의 진폭이 너무 커 기획하는 우리들도 살얼음판을 걸을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대안공간에 불과했던 아트선재센터는 5년만에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공간으로 떠올랐다. 이 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많은 작가들이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98년 ‘사이보그’ 시리즈로 첫 개인전을 열었던 이불은 이듬해 48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95년 ‘싹’전에 출품했던 최정화는 내년 4월 일본 도쿄의 랜드마크가 될 도심재개발프로젝트 ‘록본기 힐’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2000년 개인전을 열었던 정서영과 서도호는 각각 2001,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작가로 참가했다.

○국내외 작가 23명 내년까지 기념전

토머스 루프 작 ‘Substrat10 Ⅱ’

아트선재센터는 내년 2월 1일까지 ‘5-아트선재 컬렉션’ 전을 갖는다. 지금까지 이 공간과 인연을 맺어온 작가의 작품들을 다시 선보이는 자리이자, 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을 새롭게 보여주는 전시회란 점에서 주목된다. 최정화, 이불, 정서영, 안규철, 이동기, 김홍석, 박이소, 김범 등 국내 젊은 작가들과 실비 플러리, 토머스 루프, 도나단 몽크, 장-자크 륄리에, 파브리스 위베르 등 외국 작가들까지 총 23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최정화의 ‘현대미술의 쓰임새-칼라칼라칼라’(1994년 작)가 눈에 들어온다. 미술관 3층에서 1층까지 유리창에다 색색의 전구들을 커튼처럼 길게 늘어뜨린 작품으로 ‘키치’(kitsch· 조잡한 방법으로 예술의 엄숙주의를 비웃는 표현방식)적 세계를 보여주는 이 작가의 대표작이다.

이불의 사이보그 시리즈인 ‘Cybog W1∼W4’은 2층 전시장 한 가운데 설치됐다. 리옹비엔날레(1997년)와 베니스비엔날레(1999년)에서 소개됐던 작품들이다. 실비 플러리의 네온 작품 ‘Bigger Splash’는 확 트인 2층 전시장을 둘러싸고 있다.

인터넷상의 포르노 사진을 컴퓨터로 재처리해 주목받고 있는 독일 사진작가 토머스 루프의 누드 시리즈 ‘Substrat10 Ⅱ’, 정서영의 설치작품 ‘꽃’과 ‘전망대’,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캐릭터로 대중문화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이동기의 ‘생각하는 아토마우스’도 만날 수 있다. 김홍석의 ‘Eyes Wide Shut-프로젝트 뮤지움 뮤지움’은 약 4m²의 공간에 7000와트 이상의 강력한 조명을 설치했다. 갑작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빛 속에서 관객들은 당혹감과 산뜻함을 느낀다. 이 밖에 김나영의 ‘새로 나온 개집’, 마이클 주의 ‘ARTIECO’ ‘Coyote’, 정연두의 ‘상록타워’ 등도 전시된다. 02-733-8945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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