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공간에서 주류공간으로
그로부터 3년 뒤인 98년 한옥 옆에 건물이 들어서고 아트선재센터가 문을 열었다. 아트선재센터는 그 뒤 여러 면에서 한국 문화계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전시장 외에도 소극장 겸 공연장, 시청각실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미술관=전시’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렸기 때문이다.
개관이후 전통적 미술장르의 틀을 넘어 영화 음악 만화 등 혼성 문화적 흐름에도 관심을 쏟았고, 현대성과 실험정신을 화두로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 지원해왔다. 독립영화제인 ‘퀴어영화제’를 수용했으며, 주차장과 화장실까지 전시장화하는 파격도 선 보였다. 비주류의 언더그라운드 문화흐름을 과감하게 소개하고, 어린이를 위한 참신한 미술교육 프로그램들도 마련했다. 김선정 부관장은 “지금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너무 파격적인 행사들이 많았다. 안팎으로 반응의 진폭이 너무 커 기획하는 우리들도 살얼음판을 걸을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대안공간에 불과했던 아트선재센터는 5년만에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공간으로 떠올랐다. 이 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많은 작가들이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98년 ‘사이보그’ 시리즈로 첫 개인전을 열었던 이불은 이듬해 48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95년 ‘싹’전에 출품했던 최정화는 내년 4월 일본 도쿄의 랜드마크가 될 도심재개발프로젝트 ‘록본기 힐’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2000년 개인전을 열었던 정서영과 서도호는 각각 2001,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작가로 참가했다.
○국내외 작가 23명 내년까지 기념전
아트선재센터는 내년 2월 1일까지 ‘5-아트선재 컬렉션’ 전을 갖는다. 지금까지 이 공간과 인연을 맺어온 작가의 작품들을 다시 선보이는 자리이자, 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을 새롭게 보여주는 전시회란 점에서 주목된다. 최정화, 이불, 정서영, 안규철, 이동기, 김홍석, 박이소, 김범 등 국내 젊은 작가들과 실비 플러리, 토머스 루프, 도나단 몽크, 장-자크 륄리에, 파브리스 위베르 등 외국 작가들까지 총 23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최정화의 ‘현대미술의 쓰임새-칼라칼라칼라’(1994년 작)가 눈에 들어온다. 미술관 3층에서 1층까지 유리창에다 색색의 전구들을 커튼처럼 길게 늘어뜨린 작품으로 ‘키치’(kitsch· 조잡한 방법으로 예술의 엄숙주의를 비웃는 표현방식)적 세계를 보여주는 이 작가의 대표작이다.
이불의 사이보그 시리즈인 ‘Cybog W1∼W4’은 2층 전시장 한 가운데 설치됐다. 리옹비엔날레(1997년)와 베니스비엔날레(1999년)에서 소개됐던 작품들이다. 실비 플러리의 네온 작품 ‘Bigger Splash’는 확 트인 2층 전시장을 둘러싸고 있다.
인터넷상의 포르노 사진을 컴퓨터로 재처리해 주목받고 있는 독일 사진작가 토머스 루프의 누드 시리즈 ‘Substrat10 Ⅱ’, 정서영의 설치작품 ‘꽃’과 ‘전망대’,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캐릭터로 대중문화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이동기의 ‘생각하는 아토마우스’도 만날 수 있다. 김홍석의 ‘Eyes Wide Shut-프로젝트 뮤지움 뮤지움’은 약 4m²의 공간에 7000와트 이상의 강력한 조명을 설치했다. 갑작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빛 속에서 관객들은 당혹감과 산뜻함을 느낀다. 이 밖에 김나영의 ‘새로 나온 개집’, 마이클 주의 ‘ARTIECO’ ‘Coyote’, 정연두의 ‘상록타워’ 등도 전시된다. 02-733-8945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